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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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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 // 황지우 2013년 11월 서울 노을공원에서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
가을혁명 // 이영혜 2013년 11월 월출산에서 혁명은 피를 봐야 한다 때가 되자 가을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세상을 뒤집어 엎었다 사방 핏빛이다 혁혁한 공을 세운 단풍나무 우쭐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이제 그가 왕 노릇하겠다 날이 갈수록 추종자 늘어나니 사철 푸른 소나무의 곧은 혈기도 지금은 물..
가을 // 정호승 2013년 10월 지리산에서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세월 // 도종환 2011년 6월 원적산에서 여름 오면 겨울 잊고 가을 오면 여름 잊듯 그렇게 살라 한다 정녕 이토록 잊을 수 없는데 씨앗 들면 꽂 지던 일 생각지 아니하듯 살면서 조금씩 잊는 것이라 한다 여름 오면 기다리던 꽃 꼭 다시 핀다는 믿음을 구름은 자꾸 손 내저으며 그만두라 한다 산다는 것은 조..
그리움 // 유치환 2012년 10월 서울 하늘공원에서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
천불동 가을// 권경업 2008년 10월 설악산 천불동계곡에서 어머나 냇 바닥에 불이 났네 옛날 누구 속 앓이로 일던 불 저런 저런 山川魚 놀라 허둥대고 개여울로 불 번지네
동강, 저 정선 아라리 // 문인수 2013년 9월 동강 백운산에서 산을 여는 것은 어디나 초록강입니다. 강원도 정선의 산중을 참 여러 굽이 에돌아 흐르는 동강 물머리를 심호흡으로 깊이 끌어들여 지그시 오래 눈감아보시지요. 사람의 속이 저와 같이 첩첩하여서 그 노래 또한 얼마나 여러 굽이 에돌아 흐르는지요. 강 따라 ..
음악 // 복효근 2012년 10월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신의 악보는 딱히 오선은 아니어서 더더구나 직선만은 아니어서 저 넌출넌출 산 능선과 그 사이로 굽이굽이 사라져 보이지도 않은 강줄기가 그것이리라 세상의 모든 길과 사람 사는 동네로 휘어드는 몇 가닥 전선줄도 악보 아니랴 무리져 날아오르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