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시 (93) 썸네일형 리스트형 새는 너를 눈뜨게 하고 // 천양희 2012년 9월 고대산에서 이른 새벽 도도새가 올고 바람에 가지들이 휘어진다 새가 울었을 뿐인데 숲이 다 흔들 한다 알을 깨고 한 세계가 터지려나보다 너는 알지 몰라 태어나려는 자는 무엇을 펼쳐서 한 세계를 받는다는 것 두근거리는 두려움이 너의 세계라는 것 생각해야 되겠지 일과 일.. 삶 // 고은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뿐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 눈부처 // 정호승 2012년 10월 영남알프스 천황재에서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 거짓말처럼 봄이 // 심호택 대지는 초록빛 원피스의 마지막 단추를 푼다 잎새들 사이 버찌가 익어 까만 브로치들 반짝이고 꿀벌이 교실에 들어와 붕붕거리는 유월은 눈이 부시다가 아프다 거짓말처럼 봄이 갔어 산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거기 누군가 있어 중얼거리지만 아니다 삶이란 별나게도 참다운 데가 있어 ..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 류시화 2012년 10월 옥순봉에서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 강릉, 7번국도에서 _ 잘 닦여진 길 위에서 바다를 보다 // 김소연 2013년 3월 정동진에서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오면 걸어 들어가요 우리 이 길을 버리고 바다로 넓은 앞치마를 펼치며 누추한 별을 헹구는 나는 파도가 되어 바다 속에 잠긴 오래된 노래가 당신은 되어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2012년 6월, 터키 셀축에서 이스탄불로 넘어가는 새벽길에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 물소리에 기대어 // 전동균 눈 쌓인 얼음의 골짜기 아래로 흘러가는 찬 물소리, 어쩌면 내 삶은 말 못하는 짐승 같은 것으로 다시 태어날지 몰라, 중얼거리면서 속이 훤히 비치는 물소리에 기대어 마음은 오래 묵은 흙처럼 착해지고 떨어진 황혼의 깃털 하나에도 절하고 싶은 것을. 2013년 2월 민주지산에서 이전 1 ··· 4 5 6 7 8 9 10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