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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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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고 싶은 곳// 최문자 2015년 9월 방태산 어두원곡에서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 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지상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이외수 2015년 8월 고성 청간정 앞 동해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
고요// 김원길 2015년 6월 백운봉에서 달도 지고 새도 잠든 정적 속 눈 감고 귓전에 스스스스 지구가 혼자서 조용히 자전하는 소리 듣는다
숲길에서// 강세화 2015년 6월 설악산 아니오니골에서 금속성의 비정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결 타고 흐르는 새소리도 들으며 풀잎새 한들거리는 숲길이고 싶어라. 모든 가치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대체 무엇이며 삼라만상은 어떤 뜻인가 그 모든 잡다한 일들 그냥 잊고 싶어라. 하늘엔 구름 한 장 숲 ..
낙화// 이형기 2015년 4월 도쿄 아사쿠사 유곽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
꽃 진 자리 // 여영현 새들처럼 꽃 이파리도 하늘을 난다 낮게 흐르는 꽃잎은 벌써 청자빛 하늘, 화문 하나를 찍고 있다 과목 아래를 걸어본 사람은 안다 환한 사과꽃 향기 이마나 등에 찍혀 저무는 한 때를 그리워 한다는 것을, 바람은 청동거울을 문지르듯 부조처럼 떠오르는 푸른 얼굴을 새긴다 자세히 보면..
꽃이 되는 건// 이해인 2014년 4월 천마산에서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 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기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