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시 (93)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둠이 아직 // 나희덕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 5월 // 고창환 서리산에서, 2012년 5월 바람이 지날 때마다 눈이 부시다 잎이 넓은 나무들 세상의 그늘을 가려주지 못하고 나지막히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의 웃음처럼 환한 잇몸을 드러내며 햇살이 쏟아진다 사람의 흔적이 자목련 향기처럼 아름답다 숲을 떠난 꽃씨들이 .. 크낙산의 마음 // 김광규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운 날은 편안한 집을 떠나 산으로 간다 크낙산 마루턱에 올라서면 세상은 온통 제멋대로 널려진 바위와 우거진 수풀 너울대는 굴참나뭇잎 사이로 살쾡이 한 마리 지나가고 썩은 나무 등걸 위에서 햇볕 쪼이는 도마뱀 땅과 하늘을 집 삼아 몸만 가지고 넉..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 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봄, 지금 오는 중 // 권대욱 봄, 지금 온다고 그러더라 작년 이맘때 갈무리해 둔 모든 것이 작은 틈새에 얼핏 떠오르는 건 실눈 틈새에 얼핏 떠오르는 건 작은 계절의 언저리에서 머뭇대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여유로움으로 채색되어진 마음을 통째로 내어주고 겨우내 보듬었던 살가움으로 꽃봉오리 열어놓고 .. 동백꽃 // 유광종 서리 맞은 동백꽃 햇살에 젖어 선홍색 화장을 한다 이미 초목은 바위 뒤로 숨은 지 오래 떨어진 꽃잎 위에 꽃이 핀다 이월의 꽃보다 붉은 너의 미소 흰 눈 밭 도솔천에 흐른다 제주올레에서, 2011년 1월 성에꽃 눈부처 // 고형렬 선자령에서, 2011년 3월 일월 아침 얼음빛 하얀, 성에꽃 흘러내린다 저 슬픈 마음 네 눈동자 속에서 흐른다 낙화를 슬퍼한 옛 시인들아, 나는 오늘 그 성에꽃들이 물이 되는 소리를 듣는가 반짝이는, 말없는, 붙잡을 수 없는 은빛 잎 창밖은 모래알이 떨고 있는 추운 아침 가질 수가 .. 발자국 // 전정아 이른 새벽 새 한마리 쪼르르 눈 쌓인 산길을 넘어갔다 작은 새 발자국 능선을 넘어 길고 긴 순례의 길을 걸어갔다 발자국을 따라가며 새발자국 화석을 생각한다 눈 위를 맨발로 걸어간 꽁꽁 얼어붙은 발자국에는 비린 살냄새와 가냘픈 심장소리 새는 잠시 고단한 날개를 접고 적.. 이전 1 ··· 7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