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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강원도

고성 9일 해파랑길49코스- 김일성병장-이기붕별장-이승만별장

2023.10.28(토)

 

오늘은 해파랑길49코스를 도는 날이다.

거진항에서 출발해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서까지 가는 코스다.

아쉽게도 중간에 멈추어 섰지만, 그런대로 중요한 몇몇 곳은 아내와 함께 들려 구경하고 나왔다.

 

 

 

들머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우리 부부가 찾기엔 코스 출발점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마을버스 운전수 덕에 찾기는 했다- '거진항해맞이공원 입구'

 

 

 

 

 

'소원의 등불'

초기엔 이처럼 조각품들이 널려 있었는데.

 

 

 

 

 

 

 

 

 

 

 

왼쪽-일출- 안녕하세요

오른쪽- 강인의 미덕

 

 

 

 

 

왼쪽- 기다림

오른쪽- 희망의 빛

 

 

 

 

 

'거진해맞이 12지신상'

12지신은 12방위에 따라 다른 동물 얼굴과 사람 몸의 형태를 하고 있는 12종류의 신이라고 한다.

십이 신장 또는 십이 신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12방위에 맞추어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얼굴을 하고 있고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12지신의 띠에는 서로 맞는 띠 궁합도 있다고 한다.

 

 

 

 

 

'행복을 전합니다'.

언덕에 올라서서 가며 이런저런 조각상들을 보며 간다.

 

 

 

 

 

여기는 '화진포해맞이교'.

서서히 아내가 힘들다는 표시를 한다.

며칠 전 골프장에 갔다 오더니 힘들다는 말씀.

여기서 조금 더 올라 '응봉'가는 길에서 멈추어 섰다가 아랫길로 내려간다.

응봉은 2015년에 싱가포르 리센룽 총리 부부가 개인휴가를 즐기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통일전망대를 들린 다음 응봉에 올라 

화진포의 아름다움을 알려 싱가포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렸던 곳이다.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하산 후 그래도 이름값하는 곳,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 별장은 구경한다.

 

 

 

 

 

우리가 걸은 코스는 '화진포해맞이교'에서 내려와

해안을 따라 걷다가 차를 세운 거진항으로 되돌아 가는 것.

 

 

 

 

 

 

 

 

 

 

백섬해상전망대.

저 위에 올라가 찍어 봐야 그냥 그럴 것 같아 그냥 간다.

 

 

 

 

 

 

 

 

 

 

 

어디서 식사를 해야 하나?

거진전망대펜션 앞에 '해녀횟집'이 있다.

사실 제주도 돌아다니며 가끔 '해녀횟집'에 들어갔다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은 망설였는데.

아주 좋다.

우리가 시켜 먹은 물회......물회가 아주 싱싱하다.

나중에 살펴보니 나름 의미 있는 집이다.

 

 

 

 

 

 

 

 

 

 

 

김일성별장.

이 별장은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킬 때,

당시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가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에게 의뢰하여 1938년 이곳에 건립하였으나

6.25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6년 5월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축 당시 회색돌로 지어진 건물이 해안 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하고

유럽의 성을 재현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졌으며,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 일가가 이 곳을 휴양지르로 이용하면서

지금은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우고 있다.

1964년 재 건축 1999년 이후 안보전시관으로 사용됨.

 

 

 

 

 

 

 

 

 

 

 

 

 

 

 

 

 

이기붕 별장.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오다가

휴전 이후 부통령 부인이었던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였다.

 

 

 

 

 

 

 

 

 

 

 

왼쪽 다리를 건너 오른쪽 별장이 이승만 대통령 별장.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1954년 27평 규모로 신축하여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했으나

이후 철거된 건물을 새로 지워 육군관사로 사용하였다.

그후 1997년 7월 현재의 위치에 본래의 모습으로 별장 건물을 복원하고 유품을 전시하다가,

2007년 2월 이화장에서 추가적인 자료와 함께 새롭게 건물 복원을 한 후

8월 화진포 기념관을 개설한다.

이 근처에 육군별장도 함께 있다.

 

 

 

 

 

아내는 기념관에 적혀 있는 기록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사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는 왜 대통령 자리에 연연해 주석을 차지한 김구를 외면했을까?

해방 후 항일 투쟁한 상해 임시정부와 왜 담을 쌓았을까?

그는 왜 친일파들과 손을 잡고 임시정부 요인들을 괴롭혔을까?

그는 왜 대전에 있으면서 곧 서울을 수복할 것이라 거짓말을 했을까?

그는 왜 4.19세력에 의해 거리로 쫓겨났나?

 

 

 

 

 

화진포 설화.

먼 옛날 화진포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답례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의 고충산까기 올라갔다 며느리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딱 멈춰서서 며느리에게 묻는다.

'왜 자꾸 나를 따라 오시오'라고 묻자 며느리는 사정을 말하며 용서를 빈다.

그러자 그제야 스님은 '나를 따라 오더라도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말한다.

며느리가 스님을 따라 몇 걸음 옮기다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비가 내려온다.

그 소리에 놀란 며느리가 잠시 뒤돌아보다 그만 돌이 되었다.

그후로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 한다.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화진포 설화다.

 

 

 

 

 

어디서인가.

예전에 이곳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은 힘들다.

지는 해를 찍으면 이제는 눈이 어두워 집까지 갈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간 후 '대게좋아홍게'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정말 맛있게 먹은 음식이다.

다음 날 일찍 청소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