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6.5(화)
오후 3시 30분, 탄도안 역
이제 앙카라 성으로 간다.
앙카라이를 타고 크즐라이 역에 가서, 메트로로 갈아타고 울루스 역에서 내리면 된다.
오후 3시 50분, 울루스 역
울루스 광장에 있는 아타튀르크 동상, 메트로 울루스 역에서 6,7분 거리.
역에서 내렸을 때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 옆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옆에 있던 청년이 방향을 알려준다.
잠시 후, 자신이 가야할 길에서 조금만 돌아가면 된다고 말하며 함께 걸었다.
빌크넷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셀만(Selman)군.
내가 지금 아타튀르크 묘소에서 오는 길이라고 말하자 상당히 감동하는 눈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 가 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그곳엔 아나톨리아 고원 지대를 무대로 명멸했던 왕국들의 유물들이 있는데,
상당히 가치있는 물건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주변 지역에 있었던 히타이트 왕국의 유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간이 없다. 그곳까지 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관람 시간은 채 30분을 못 넘긴다.
결국 포기하고 앙카라 성만 보기로 했다. 이번 터키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일 가운데 하나다.
바로 이 친구다. 앙카라 성으로 가는 길목까지 함께 걸었다.
상당히 친절했고,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이번 터키여행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귀국 후 이메일과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으로 꼭 초대하고 싶은 친구.
현재 애인과 함께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4시 10분, 앙카라 성
앙카라는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 실크로드 대상들의 중간 기착점이었으며,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이 지역을 점령한 자들은 성벽을 쌓아 지킬 필요성이 컸다.
처음 창건한 것은 갈라티아인들이지만 후대에 증축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이곳에 올라서면 앙카라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조금은 스산하다.
상당히 넓은 지역인데 관리가 허술하고, 관광객은 보기 힘들며, 동네 주민들 몇몇만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앙카라의 볼거리인 이곳에 왜 이렇게 여행객이 없지?
20대 중반으로 보였던 이 친구들, 서로간에 말을 전혀 주고 받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그들 곁으로 갔을 때 피우던 담배를 내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 주었다.
대충 올라갈 때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저 높은 곳에 터키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곳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곳에 가기 위해 꼭대기로 올라가니 동네가 있다.
마치 우리들의 산동네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있었고.......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보고 놀고 있던 아이들이 반가워한다.
지금 이곳 앙카라 성엔 여행객이라곤 나 혼자였었다.
바로 저 깃발이다.
저곳을 향해 올라왔는데 이런 동네가 성 안에 있다니......
철조망으로 그곳 가는 길이 막혀 있었고, 철조망 앞엔 빨래들이 널려 있었다.
마치 우리 시골동네와 같은 모습이다.
철조망을 넘어갔다.
저 깃발까지 오르는 길이 없다!
약간은 허무했다. 발길을 돌렸다.
앙카라의 빈촌 지대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올라올 때와 다른 길로 내려갔다.
저 왼쪽을 보라. 한 여자아이는 앉아 있고 다른 여자아이는 누워 있었다.
이 사진을 찍고 다시 가려는데 누워 있던 아이가 나를 발견했다.
자신을 가리키며 '미스 앙카라'라고 외쳤다.
노는 아이들. 10대 중반이었다.
이 녀석들 사진을 찍고 나니 '1달러' 하고 외친다. 등을 보이는 녀석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내가 '고뤠?' 하고 외치자 깔깔대고 웃는다.
그리고는 앞에 등장했던 여자아이들과 접선한다. 노는 아이들.
앙카라 성 안의 동네를 돌며 여행자에게 참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동네다.
가난이 범죄와 꼭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리고 여행객에게 이런 겁없는 10대 후반이 가장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라, 이 순진무구한 얼굴들을.
이들을 보는 순간, 가운데 청바지를 입은 녀석이 대장임을 금세 알아챘다.
_ 너 잘 생겼구나. 사진 한 장 찍자
내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자 폼을 잡는다.
그리고 주변 똘마니들도 같이 포즈를 취한다.
_ 일본인?
_ 아니, 한국인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성에서 내려와 울루스 광장으로 가기 직전, 재래시장이 있다.
이스탄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관광객이 없는 진짜 시장이다.
워낙 이 지역에 대한 평판이 가이드 북에 안 좋게 나와 있어 배낭과 카메라를 단단히 간수했다.
앙카라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울루스 지역과 크즐라이 지역.
내가 다음 코스로 잡은 크즐라이 지역은 번화가로 번듯하지만,
울루스 지역은 낙후된 곳. 그래서 어쩌면 더 사람냄새가 나는 곳.
어디선가 닭장 속의 닭이 튀어나오고,
어디선가 칼로 오리의 목을 내치고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
시장통 입구,차량들로 혼잡하다.
오른쪽 택시를 보라. 기사는 어디론가 갔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쇠사슬로 묶어놓은 모습을.
저 멀리 앙카라 성이 보인다.
오후 5시 20분, 울루스 광장
가이드 북에 따르면 이 울루스 광장은 위험 지역이다.
매춘, 마약, 폭력 사건이 자주 일어나 일몰 후 접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돌아다니던 이 시간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메트로 울루스 역으로 가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사프란볼루를 걸어 들어갈 때 내 옆을 스쳤던 그 중국인 남자다.
오늘 여기서 하루 묵고, 동부 지역으로 간다고 한다. 내가 갈 곳은 서부 지역.
서부 지역은 볼거리가 많은 세계적 관광지들이 즐비한 반면,
동부는 거친 환경의 남성적 자연을 지닌 곳으로 서부에 비해 여행객이 훨씬 적은 편이다.
나는 이번 터키여행을 끝내고 또다시 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부를 돌 작정이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 친구 비쩍 마른 몸에 꺼벙한 스타일이다.
어떻게 그곳을 돌까 싶었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이 순간 그 친구,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_ 좀 멍청해 보이는데 어떻게 혼자 배낭 메고 터키여행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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