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1(목)
동서울터미널(9:35)_ 횡계터미널(12:10)_ (점심, 택시 이동)_ 선자령 입구(1:20)_ 새봉(2:40)_ 정
상(4:10)
작년 삼일절에 강원도 바우길을 걸으며 선자령에서 너무나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은 적
이 있다.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추억을 안겨 줄 것이란 보장은 없었지만 설레는 마음을 갖고 나홀
로 선자령 비박산행에 나섰다.
횡계에서 선자령 입구까지 택시비는 8000원 선.
선자령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들머리는 조금 눈이 녹은 상태이지만
대부분 아직도 눈이 살아 있다.
서울에서 올 때 하늘이 무척 쾌청했다.
선자령의 설원과 청옥같은 하늘을 그리며 가슴이 설렜다.
횡계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하늘이 돌변했다.
내가 몰고 왔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내륙에서 바닷쪽으로 짙은 안개가 넘어간다.
내일 눈이 온다고 했는데 그 전조인가?
새봉을 오르며.
선자령 산행 코스 출발점인 대관령 휴게소에서 정상으로 오를 때,
새봉을 거쳐 오르는 코스와 새봉 옆으로 우회하는 코스가 있다.
나는 새봉을 올라 접근하는 길을 택하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블랙다이아몬드의 눈삽을 준비해 갔지만,
사용할 일은 없었다.
금년 겨울 비박산행을 위해 준비한 장비이지만
결국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새봉으로 오르는 순간,
앗! 바닷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안개들을 다시 내륙으로 밀어낸다.
하늘은 잠시 바다를 닮아가고.......
왼쪽의 둔덕이 선자령 정상
동해를 바라보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견공 한 분이 선자령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신다.
흙탕물은 아무리 흐려도 수심 위에 저녁별을 띄우고
흙은 아무리 어두워도 제 속에 발 내린 풀뿌리를 밀어내지 않는다
벼랑위의 풀뿌리는 제 스스로는 두려워 않는데
땅 위의 발 디딘 사람들만 그 높이를 두려워한다
즐거움은 쌓아둘 곳간이 없고 슬픔은 구름처럼 흘러갈 하늘이 없다
사색의 다발, 이기철
저 끝에 정상이 있다.
설원과 바람의 나라, 그 수도인 선자령 정상에 오르다.
오대산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에도 설원이 펼쳐지다.
언젠가 저 위에 집을 지으리.
집을 지을 시간으로는 아직 이르다.
집 짓기 적당한 곳을 찾아 보기로 한다.
순환 코스로 내려가서 정상을 중심으로 반 바퀴 돌다.
풍력발전기 아래에서의 비박도 특이한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밤새 울어대는 소리,
그리고 고드름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야 한다.
집 짓기 좋은 몇 곳을 확인하고 다시 정상으로 왔다.
바람을 피할 수는 있지만 전망은 제로인 곳들이다.
이때 나홀로 비박산행을 오신 한 분을 만났다.
가을에 이곳 정상에 쉘터를 쳤는데, 밤새 부는 강한 바람에 기겁을 했다고 한다.
그분은 정상 아래 평원지대에 쉘터를 칠 것이라 하며,
나에게 정상 비박을 경험하라 권한다.
특급 호텔을 지어도 좋을 듯 싶은 이곳,
눈을 뜨면 동해의 바다와 일출을 볼 수 있고,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이곳.
비박지로서 더할나위 없지만, 문제는 바람이다.
보름 전 아는 사람들이 이곳 근처에 텐트를 쳤다가 도저히 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한밤중에 철수한 적이 있다.
게다가 공동 식당으로 갖고 온 힐레베르그 알타이가 찢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바람이 잠잠한 상태, 좋아 한번 세워 보자.
텐트를 치는 동안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층층을 이룬 구름은 아름다웠다.
비박을 하면서 처음으로 펙 여섯 개를 박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기온이 급강하한다.
텐트 안에 들어가 우선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찾고.......
혹시 바람이 쳐들어 오지나 않는지 순찰도 나가 보고.......
하늘의 별들도 잘 있는지 살피다가,
대평원 설원 위에서 잠들다.
풍력발전기의 슝슝,
거대한 화살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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