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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살아가는 이야기

[s5pro] 5.31 촛불 집회

 

5월 3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대학 동기 셋이 함께 갔다. 이 날 같은 시각, 대학로와 서울광장에서 각각 집회가 열렸는데,우리는 서울광장 모임에 참석한 후, 그 곳에서 저녁 7시에 모이는 촛불집회에도 참가할 예정이었다.

 

 

 

 

                 

 

 

 

시작할 때 1만 여명이던 인원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집회가 끝날 즈음에는 2만여 명 쯤 되어 보였다.안티 엠비 카페의 각 지역장들, 또는 희망자가 나와 자유 발언하고, 중간 중간 노래를 곁들였다. 

 

 

 

 

상당히 오랫만에 시민 집회에 나와 보니, 시위 문화의 커다란 변화, 아니 진화를 느낄 수 있었다.내가 지금껏 겪었던 시위는 대학생 또는 시민 단체가 주동을 섰고, 그 대의명분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스타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시위의 주동은 확실히 이름없는 시민들이었다.촛불 집회에 몇 명이 참가했다는 비서관 보고에 대통령은 그 많은 초를 누가 사줬는지, 그리고 배후세력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라고 했단다.대통령이 최소한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던지, 아니면 시위 현장에 나왔더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국민은 2008년에 살고 있는데 대통령은 독야청청 1970년대에 살고 있다.

 

 

 

 

 

 

 

 

 

 

 

 

 유모차부대는 본대가 집회를 여는 동안 따로 인도를 따라 시위를 했다.

 

 

 

 

 

 

 

 

유모차 부대와 함께, 이번 시위의 최대 히트 상품 가운데 하나인 예비군부대

 

 

 

 

 5시 30분경 일단 저녁을 먹기 위해 시청 옆 골목으로 갔다.이미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팔방에 전경들이 빽빽하다.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시 광장으로 갔다.대학로에서 집회가 끝난 사람들, 그리고 7시 촛불 집회를 위해 나온 사람들로 점점 광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7시 촛불 집회가 열렸다.상당한 인원이다.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나고 있었다.나중에 확인하니 10만이란다.서울광장은 물론 덕수궁, 플라자호텔까지 빽빽하다.무대에서는 자유발언과 노래가 이어졌다.일반 언론에서는 '미국소 수입 반대' 시위로 보도하고 있다.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영어 몰입 교육, 자사고 ,대운하, 수도 및 전기 민영화, 의료 보험 제도 변화, 굴욕 외교 등 이명박 정부의 모든 정책이 비판 대상이고, 수입 쇠고기 문제는 그런 불만에  기름을 부은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참가한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는 '수입소 반대'가 아니라 '이명박 퇴진'이다.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어떤 정책 하나도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통령이 본인의 판단에만 의존해 정책을 결정한 까닭이다.

 

 

 

 

                 이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위 대열에 합류한 대학생들

 

 

 

 

 무래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출연자들

 

 

 

 

 그냥 찍은 사진.그런데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앉아 있었다.

 

 

 

 

 유난히 장애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아마 새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 싶다.

 

 

 

 

 방송 중계 차량

 

 

 

 

 이번 시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시위의 디지탈화이다.어떤 사람이  인터넷으로 집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올리고 있다.시위는 디지털화되었는데 정부의 대응 방식은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이다.

 

 

 

 

 

 

 

 

8시 30분. 집회 시간이 30분 더 남았다.그러나 사회자가 청운동에서 시위를 하던 대학생 200명 가운데 80여 명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전하자,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결국 촛불 집회를 일찍 끝내고 가두 시위로 나서게 되었다.그러나 이미 경찰 차량들이 모든 길을 막고 있었다.몇 명씩 빠져 나갈 수  있게 열어 준 길은 서대문쪽,명동쪽 그리고 방향을 잘 모르는 곳 하나다.우리는 명동쪽으로 가고 싶었으나, 인파에 밀려 서대문쪽으로 향했다.결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세 방향으로 흩어져 행진에 나섰다.

 

 

 

 

 

 

 

 

 

 

 

 

                 중앙일보 앞에서 '조중동은 쓰레기!'를 외쳤다.재미있는 것은 이 날 집회 이후로 갑

                 자기 조중동이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직 터널을 지나는 모습

 

 

 

 

행진을 하며 주위를 살피니 참으로 놀라운 광경들이다.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들이 많이 보였고, 말쑥한 정장을 한 여성 직장인들도 상당하다.나는 허리색에 준비해갔던 쵸코렛 몇을 아이들에게 건네기도 했다.우리 서대문쪽은 이처럼 가족과 직장인 중심의 행렬이었다.주변 건물에서 사람들이 나와 박수로 격려한다.의사와 간호원도 나오고, 심지어 환자도 나왔다.슈퍼의 할머니도 빵집의 중고생도 박수를 친다.지나가던 버스 승객도 함께 구호를 외친다.민심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결국 이런 모습들은 이 날 시위에 몰래 참가했던 비서관들에 의해 청와대에 보고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세종로로 진행 중 어느 곳에선가 경찰 바리케이트에 막혔다.한참 동안 경찰들과 대치했다.'비폭력'을 끊임없이 외치며 모여든 많은 군중 앞에 결국 경찰은 무릎을 꿇었다.몇 십 분이 지난 후, 특별한 충돌없이 길을 열어 주었다.

 

 

 

 

                육교가 나타나 그 위에 올라가 찍어보았다.끝이 안 보인다.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이만큼의 군중이 이미 육교 밑을 지나갔다는 사실.그리고 이 군중이 이 날 모인 전

                체 군중 가운데 1/3이라는 사실.

 

 

 

 

                 갑자기 풍물패들이 나타나 벌써 한 시간 이상 걷고 있던 시위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이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변호사들은 만일의 경우 무료 변론을 하겠다며

                 명함을 주었고, 의사와 간호원들로 구성된 의료진이 함께 했다.의료진들은 약 뿐

                 만 아니라 간단한 식음료 심지어 의류까지 갖고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

                 었다. 이 모든 것들은 자발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세상이 따스함을 느낀다.

           

 

 

  

10시 20분.광화문 옆 효자동으로 들어가는 골목 앞에 섰다.청와대가 가까이 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일구 이후 시위대가 청와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기록이란다.아주 좁은 길이기 때문에 경찰들이 차량으로 단단히 막아놓았다.선두에 선 젊은이들이 경찰과 실갱이를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길거리에 주저앉아 노래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한다.피곤이 밀려온다.게다가 날씨가 싸늘해지고 내일 아침 일찍 군에 간 외조카 면회 계획이 잡혀 있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지루한 싸움이 계속 되고 시간이 늦어지면서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11시 쯤 되었을 때는 원래 시위자 가운데 20%정도만 남았다.북한산에 갔다가 8시부터 참여했다는 40대 등산객 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리고 11시 20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기 위해 광화문 로타리 방면으로 갔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커다란 함성이 들리며 많은 시위 군중이 또 나타났다.서울광장에서 명동으로 빠져 나갔던 시위 군중이다.이번에는 주류가 대학생들이다.엄청난 숫자였다.그 시위 군중 속에는 미식 축구 복장을 한 친구도 있어 웃음이 나왔다.효자동 입구에 있던 시위자들과 합류한다.나는 되돌아 갈까 망설이다 그냥 광화문역 방면으로 걸어나왔다.

 

 

 

 

 

 

 

 

미 대사관 앞을 지날 때, 경찰 몇 백 명과 마주 서서 시위를 하고 있는 젊은이 셋을 보았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찾으니,이미 끊겼다.어렵게 택시를 잡아 집으로 오는 길에 운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내가 타기 전 그 운전자는 시위에 참여했던 두 아이와 젊은 부부를 면목동까지 실어다 주었다고 한다.

 

 

 

 

 

 

 

 

 

 

 

 

집으로 들어와 인터넷 방송을 켰다.내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효자동 입구에서 경찰과 시위 군중들이 맞서고 있다.경찰은 해산을 종용하고 있었고 군중들은 '비폭력'을 외치고 있었다.몇 번 경고 방송이 있더니  강제 진압를 시작하면서 물대포를 발사하였다.엄청난 수압인데 시위 군중 바로 앞에서 발사한다. 아비규환이다.경찰 차 위의 시위자 한 명은 바로 몇 미터 앞에서 물대포에 맞는가 싶더니 기절해 내려온다. 나중에 기사로 보니 경찰이 진압 규정을 어긴 발사였다. 혼비백산한 시위 군중들에게 방패를 휘두르며 경찰들이 �는 화면이 곳곳에 나타났다.씁쓸하다.저런 진압은 반드시 희생자가 따르기 마련인데.......눈꺼풀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다음날인 일요일, 세 가족이 모여 외조카 면회를 갔다 온 후 컴퓨터를 켰다.어제 상황에 관한 사진들과 동영상들이 올라왔다.비참한 장면들이 많았다.물대포에 맞아 실명 위기에 놓인 사람, 전경 10여 명에 둘러싸여 두들겨 맞고 있는 남자,전경의 군홧발에 머리를 일곱 번이나 밟혔다는 서울대 여학생의 동영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그런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라는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물론 우리 어른들은 솔선해서 그런 가치 아래 살아야 한다.그러나 이런 모습은 더불어 사는 모습이 아니다.

 

 

 

 

        나는 이 날 사진 가운데 이 사진을 가장 가슴 아프게 보았다.저 해맑은 눈동자와 국가라는 집단     

        의 폭력성이 겹쳐지며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저 여학생이 들고 있던 것은 초와 종이컵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들고 있던 것은 방패와 곤봉이다.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꽃을 보기 위하여

   먼 길 걸어가는 이여

   오래 아파하는 이여

   꽃을 위하여

   오래 울고 있는 이여

   긴 세월 시달리고 있는 이여

   꽃을 보고 꽃과 함께하는 시간은

   순간이지만 언제나 아쉽지만

   때로는 끝내 못 만나기도 하지만

   꽃을 위하여

   모두를 바치는 당신의 삶은

   꽃보다 더욱 아름답다 순결하다.

   꽃을 오래 참고 기다리는 당신은

   꽃보다 더욱 눈부시다.

 

                                                   _ 차옥혜, 꽃보다 눈부신 사람

       

 

 

 

오늘 여러 언론 기관에서 조사한 여론이 발표되었다.하나같이 지지도가 20% 초반이라고 한다.여권 내부, 심지어 공무원 내부에서도 등을 돌리는 세력이 나오고, 조중동마저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마침내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모양이다.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책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을 때는 귀를 막고 있다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나서야 귀를 여는가? 장관과 비서관 몇을 경질하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진중권 교수 말마따나 '오늘 입었던 팬티 벗고 어제 입었던 팬티 갈아입는 격'이다.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의 역사 인식, 가치관,그리고 도덕성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6월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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