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2007.10.14(일)
*산행코스* 세석대피소(6:00)_ 연하봉(7:35)_ 장터목대피소,휴식(7:55_8:20)_ 제석봉(8:42)_ 천왕봉(9:33_10:05)_ 천왕샘(10:19)_ 로타리대피소(11:11)_ 법계사입구(12:42)_ 중산리 지킴터(1:25)
*산행시간* 7시간 25분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에 섰다.남한에서는 한라산(1950) 다음으로 높은 곳.1915.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마침표를 찍는 곳.사방을 휭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장쾌한 기분에 젖는다.
남명 조식은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천왕봉의 굳건한 기상을 읊은 말이리라.천왕봉 정상석 뒷면에 아로새겨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각인은 그래서 남다르다.
정상석이 있는 곳은 하늘을 향한 제단인 양 한 단계 높은 암괴로 되어 있다.그 암괴 서쪽에는 천주(天柱)라는 글씨가 있다.우리 조상들이 이 곳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를 분명하게 나타내 주는 글씨다.
천왕봉 위에서 한 친구는 제를 올렸다.그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슨 의식으로 올렸는지는 묻지 않았다.그와는 또다른 의식으로 나는 내 마음 속 제를 올리고 있었다.
천왕봉을 떠나 이제는 가장 짧은 하산길인 중산리 방면으로 내려간다.처음부터 무척 가파른 돌밭길이다.일행 중 두 명이 무릎이 좋지 않다 해서 걱정을 했다.천왕봉에 짧게 오르려는 사람들과 마주치며 하산을 한다.
하산길에서도 상당 시간 동안은 천왕봉에서의 전망에 버금가는 조망을 하며 내려간다.천왕봉에서의 추억을 잘 담아가라는 듯 트여진 전망이 나오고 또 나온다.
천왕봉 500여 미터 아래 지점에 있는 천왕샘
법계사.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고려 우왕 때 이성계에게 패한 왜군이 철수하며 불태웠고, 항일 의병 박동의 부대가 숨어들어 왜군과 맞서다 다시 불태워졌던 절.그리고 또 한국 전쟁 때 불태워졌다 다시 세워진 절이다.법계사 이후 코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이 사찰에 예불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법계사 바로 아래에 있는 로타리대피소.
로타리대피소 본채 앞에 화장실이 있다.그리고 그 뒤로 중산리 표지가 있다.지난 번 하산 때 그 길로 내려갔다.보통 다니는 길이다.그런데 이번 산행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화장실 앞쪽에도 하산길이 있다는 것이다.뒷길보다 돌이 적어 편안히 내려갈 수 있는 길이라고 산행객 누군가가 알려준다.물론 뒤쪽으로 가야 '칼바위''망바위' 등 몇 가지 명물을 볼 수 있지만, 일행 가운데 무릎이 아픈 친구들을 위해 앞길을 택했다.
우리만 이 길을 걷게 될 줄 알았다.적어도 로타리대피소에서 볼 때, 산행객 대부분이 뒤쪽길을 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하산 도중 올라오는 불자들을 상당히 많이 만났다.그들은 쉽고 빠른 길을 택해 이 길을 이용해 법계사로 가고 있었다.
하산 끝 지점에 '법계사 입구'라는 표지판이 있다.그리고 오른쪽으로 차도를 따라 30분이 조금 넘게 걸으면 일반적인 산행로 하산 지점과 만나게 된다.마지막 지점인 '중산리 지킴터'에 이르니 안내 산악회 총무가 반갑게 맞이한다.이 날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 가운데 5,6명은 두 시간 정도 늦게 그것도 다리를 쩔뚝이며 나타났다.지리산 종주를 관광차 왔던 젊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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