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봉(1808)을 넘어 천왕봉으로 향한다.이제 남은 높이는 107미터.길고 긴 지리산 종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길.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천왕봉에 오르기 직전,통천문(通天門)을 지난다.하늘로 가는 길.자연적으로 형성된 돌문이다.부정한 사람은 오르지 못한다 했는데,나같은 사람도 오를 수 있는 걸 보면,진리는 아닌 듯 싶다.천왕봉에 오르기 전, 다시 마음과 몸을 추스린다.
제석봉 부근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었지만, 천왕봉 근처는 오히려 태풍의 눈처럼 조용하다.열 시간이 훨씬 넘게 걸어온 사람들에게 제석봉은 그 피로를 씻어주며 반갑게 맞아주지만, 천왕봉 근처는 그 높이만큼 무덤덤하게 서서 자신을 찾아온 이들을 맞이한다.
천왕봉 직전에도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있다.
이제 천왕봉이 보인다.
오르면서 뒤도 돌아보고.......걸어온 주능선길이 안개로 뒤덮였다.
드이어 천왕봉에 올라섰다.해발 1,915. 1,950의 한라산에 이어 남한에서 두번째로 높고,내륙에선 제일 높은 곳.사방을 빙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장쾌한 모습이 펼쳐진다.지금 이 순간만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발 아래 있다.
천왕봉은 지리산 종주의 종착점이자, 백두대간의 마침표이기도 하다.백두산에서 뻗어내려온 대간이 이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그래서 지리산을 백두산이 흘러온 산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구름도 천왕봉 허리에 걸쳐 있다.천왕봉에 오르기 전까지는 구름이 머리 위에만 있었는데,천왕봉을 오르는 순간 갑자기 구름떼가 나타나 천왕봉 허리를 감싸더니 천왕봉 옆을 지나간다.이 순간 구름이 내 발 밑에 존재하는 짜릿한 기분을 만끽한다.
하나의 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산국(山國)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지리산.그 넓고 깊은 세계는 우리 겨레의 많은 것들을 품어 주었다.특히 주류에서 비켜 있던 것,저항적인 것들을 그 넓고 깊은 가슴으로 품어 주었다. 그래서 반역산이라고도 불리었던 지리산.가야의 임금이 음악하는 명인을 찾아 정치를 물으려 하니 그가 숨은 곳이 지리산이요, 신라 시대 최치원이 초월의 세계를 찾아 사라진 곳도 지리산이요,동학을 일으킨 최제우가 경주에서 박해를 받자 피해 와서 혁명 주체를 키운 곳도 지리산이요, 구한말 김일부와 강증산이 사상적 뿌리를 키운 곳도 지리산이요, 빨치산 붉은 사상까지 품어 주었던 곳도 지리산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하늘은 울어도 만고의 천왕봉은 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구름도 천왕봉의 기세에 눌렸는지, 천왕봉을 넘지 못한 채, 그 허리에서 맴돌다 지나간다.
30분이 넘게 천왕봉의 품에 안겼다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지름길인 중산리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1차 목표지는 로타리대피소.잔돌도 많고 비탈도 심하다.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다.
천왕샘...남강 발원지
로타리대피소...한창 보수 공사 중이었다.
망바위...이 때부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배낭에서 레인 커버를 꺼내 씌우려 했으나 아뿔싸! 짐을 너무 빵빵하게 넣은 탓에 커버가 감당을 못했다.아슬아슬하게 커버를 걸친 채 하산을 해야 했다.
칼바위 아지트
하산 종착 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오른쪽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다.시원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탁족이라도 하고 싶었건만 시간상 어쩔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
어느 누군가 말했다.'설악은 끌리고(引), 오대산은 편안하고(安), 지리산은 모르겠다(不知)'고.그 모름이 나에게는 지리산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지킴터
'산과 길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우이동_ 백운대_ 북한산성 입구 (0) | 2007.09.09 |
---|---|
북한산, 불광역_ 족두리봉_ 진관사계곡_ 구파발역 (0) | 2007.08.29 |
지리산, 성삼재_ 노고단_ 세석산장_ 천왕봉_ 중산리 (4_3) (0) | 2007.08.24 |
지리산, 성삼재_ 노고단_ 세석산장_ 천왕봉_ 중산리 (4_2) (0) | 2007.08.22 |
지리산, 성삼재_ 노고단_ 세석산장_ 천왕봉_ 중산리 (4_1) (0) | 2007.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