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여행/강원도

고성 3일 금강산 건봉사-왕곡마을- 송지호

2023.10.22(일)

 

 

 

일출이야 뭐 다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잊은 것이 있다. 요즈음 6시 40분 정도에 해가 뜬다.

이 사실을 늦게 깨닫고 오늘에서야 뜨는 해를 본다.

아주 좋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날은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로 끝난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오늘 첫 걸음은 금강산 건봉사다.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감로봉 동남쪽 자락에 자리한 오래된 절로, 석가모니의 전신 사리을 모시고 있다.

한때 3,183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불이문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1994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승병을 조직한 곳이자 

일제강점기 때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호국 사찰이기도 하다.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승려 아도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이곳에 절을 지었다 한다.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승려 발징이 절을 고쳐 짓고 1만 일 동안 염불을 외우며 수행하는 '만일회'를 열었으며,

이 모임은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공민왕 7년 (1358)에 나옹화상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한국 전쟁 당시 고성에서 약 2년 간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이 이루어지면서

1920년에 지어진 불이문을 제외한 모든 절터가 폐허로 변했다.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들린 곳.

고성 8경 가운데 첫 번째 장소다.

 

 

 

 

 

해탈의 길에 있는 나무고 이어진 연화교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한다.

건봉사터에 남아 있느 불이문은 1920년에 세운 것.

 

 

 

 

 

 

 

 

 

 

 

극락전.

건봉사는 역사상 최초로 염불만일회를 개최한 최고의 아미타 염불사찰로서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전국 4대 사찰 중 한 곳이었다.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서 봉안되어 있다.

관세움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적멸보궁.

건봉사에 봉안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선덕왕 5년(636)에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문수보살전에 기도 끝에 얻은 진신사리 100과 중 일부다.

자장율사는 643년에 귀국하여

이 사리들을 5대 적멸보궁(통도사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봉정암)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인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통도사에 난입하여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해 갔던 것을 1605년 사명대사가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되찾아 왔다.

사명대사는 이 불사리가 재차 왜적의 침탈 표적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을 중수하여 사리를 다시 모시고

그 가운데 치아사리 12과만을 맨 처음 의승군을 규합하여 인연이 있는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건봉사에서는 1724년(경종4) 사리탑을 세워 이 진신치아사리를 다시 봉안하였다.

 

 

 

 

 

 

 

 

 

 

 

보궁치아사리탑

 

 

 

 

 

 

 

 

 

 

 

 

 

 

 

 

 

 

 

 

 

 

 

능파교.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홍교(무지개 모양의 다리)로서 

규모도 크고 잘 보존되어 있다.

 

 

 

 

 

 

 

 

 

 

 

 

 

 

 

 

 

 

 

 

 

 

 

 

건봉사 앞에 있는 사명대사기적비(복제품).

이 비석은 '한국금석총람'과 '조선사찰사료' 및 '건봉사본말사적'에 비문이 소개되어 있어

본래부터 건봉사에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비석을 완전히 파괴하고 매몰시킨 탓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990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술조사단에 의해 파손된 비신 파편 일부와

비좌 및 이수(머릿돌)가 건봉사 사역 안에서 수습되었다.

복재된 비석의 비좌는 본래의 부재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조사에서 수습된 비신의 파편과 이수는 새로 제작한 기적비의 주변에 전시하였다.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관.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에서 출가하였으나

1907년 건봉사에서 최초 안거수행 이후 만화선사로부터 전법을 받아 만해라는 당호를 받았으므로 출가본산은 건봉사다.

또한 이듬해에 5-10월까지 일본을 사찰하고 귀국한 뒤

건봉사에서 이학암 강백으로부터 화엄경과 반야경을 배움으로써 건봉사와는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게 된다.

 

 

 

 

 

건봉사를 나와 근처의 건봉막국수에서 점심 한 그릇한다.

메밀 가루을 거칠게 갈아 그런지 뭉툭뭉툭한 맛이 좋다.

 

 

 

 

고성왕곡마을.

건봉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분인 양근 함씨 함부영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 은거한데서 연유하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채 잘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민속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월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마을이 여러 개의 산으로 잘 분리되고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전란과 화마의 영향이 없었다 한다.

한국전쟁과 근래 고성 지역에서 발생한 화마 때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왕곡마을 정미소.

1968년에 건립되어 오랫동안 사용된 근대기 농촌마을의 중요한 공동 시설물이자

상징적인 건물로서 왕곡마을 중심거리 초입에 위치한다.

 

 

 

 

 

 

 

 

 

 

 

오봉교회.

1919년 김정섭 속장이 설립한 교회다.

첫째, 예배당 외관은 한국교회 초기의 예배당 형태 중 하나인 기역자 모양이다.

둘째, 교회를 알리는 안내판은 예배당 출입구 처마 밑에 부착해 놓았다.

셋째, 교회의 상징 중 하나인 십자가는 예배당 지붕이나 외벽이 아닌 예배당 뒤편 기둥 옆에 세웠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키 작은 나무 십자가는 마을을 향해 서 있다.

 

 

 

 

 

함희석 효자비. 1869년에 건립되었다,

효자 함희석은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바다에 헤엄쳐 나가 귀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였다.

하루는 천화로 집안에 큰불이나 부모가 큰 화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지성으로 부모를 보살피는 등 효성을 다하였다.

 

 

 

 

 

 

 

 

 

 

 

영화 '동주' 촬영지.

시인 윤동주와 그의 영원한 벗이자 사촌형이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옥중에서 윤동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교차적으로 구성하였다.

아쉽게도 못 본 영화다.

 

 

 

 

 

양근함씨 4세 5효자각. 1820년 건립.

어린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동몽교관을 지냈던 함성욱은 

부친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부친께 먹여 병환이 나와 7일을 더 살 수 있게 했다.

그후 그의 아들들도 모두 부모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부모님께 드리니

그 효자각을 이곳에 세운다.

 

 

 

 

 

왕곡마을을 떠나며......

 

 

 

 

 

다시 근천에 있는 송지호 관망타워에 입장한다.

맨 위층,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이곳에 위치한 산소길을 나중에 둘러보기로 한다.

 

 

 

 

 

아내가 골프를 치러 서울로 가야 한다.

모레 쯤 다시 내려올 참이다.

 

 

 

 

 

저녁시간이다.

아내를 보내고 나홀로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