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31(토)
호남 고속버스터미널 출발(12:00)_ 광주 고속버스터미널 도착(3:15)_ (아침식사)_ 광주 고속버스 터미
널 출발(4:40)_ 해남 땅끝마을 도착(7:10)_ 땅끝 출항(8:00)_ 산양선착장 도착(8:05)_ 세연정 도착(9시)
_ 동천석실(9:30)_ 곡수당터(10:15)
봄을 마중하기 위하여 비박배낭을 메고 보길도로 향햇다. 원래는 지난 주말에 가려 했으나 일기불순으
로 가지 못했다. 사실 금주도 일기예보가 오락가락하여 일주일 내내 망설이다 금요일 점심때 쯤 떠나기
로 결정하고 서둘러 나섰다. 오후에 아이포토님과 전화 연결이 되면서 오랫만에 둘이 비박산행 겸 여행
을 떠났다.
오전_ 윤선도 유적지
오후_ 수리봉 격자봉 산행 및 보옥리 공룡알해번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 마침내 땅끝마을에 도착하다.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바다의 눈을 볼 수 있다는 땅끝마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일출이 막 끝난 시각,
떠오른 태양이 형제섬 위에서 작렬하고 있었다.
오늘은 해남 땅끝마을을 그냥 스쳐간다.
그러나 내년 봄에는 땅끝마을 그리고 두륜산을 두루 돌아보며 비박산행을 하고 싶다.
땅끝마을의 모습
전망대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곡선 모양의 전망대 오르는 모노레일이 희미하게 보인다.
출항
우리는 보길도행 배표를 끊었다.
당연히 이 배가 보길도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보길도 청별선착장엔 하루에 세 번밖에 배가 닿지 않고,
보길도 옆 노화도의 산양선착장엔 매시간 배가 오간다.
우리가 승선한 배도 나중에 알고 보니 노화도행이었다.
노화도나 보길도는 생각보다 상당히 큰 섬이다.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곳을 쉽게 가려면 택시를 이용하거나 승용차를 타고 가야 한다.
마침 같은 배를 타고 오신 해남 어느 초등학교장 선생님 부부가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을 옮겨다니는 동안
그들의 차량에 우리를 동승시켜 주셨다.
윤선도.
병자호란 그리고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송시열과의 정쟁 등으로
일생 중 40여 년을 머물렀던 격자봉 산기슭의 부용동 마을, 그리고 세연정.
그는 자신이 생각한 아름다운 세상을 이곳에 디자인하고
세월을 낚으며 살았다.
강호한정(江湖閑情)에 빠져 살았던 그의 삶이 부럽기만 하다.
그 유명한 세연지와 세연정
세연정에서 낙서재로 가는 길에 있는 동천석실 산행로 입구,
동백나무 차나무 자귀나무가 빽빽하다.
초등학교장 선생님 차량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곳, 두 분이 너무 감사하다.
격자봉 기슭에 세연정을 비롯한 부용동 마을이 있고
그 건너편 오운산 중턱에 석실이 있다.
입구에서 걸어 10여 분 거리다.
윤선도는 이 한 평의 집에서 자신이 만든 자신의 세계 부용동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셨을 것이다.
바위 위에 마치 요새처럼 또는 전망대처럼 자리잡고 있는 동천석실.
구름에 흘러가는 달을 보며 술 한 잔도 즐겼을 것이다.
동천(洞天)은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을 가리키는 낱말로
신선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고산이 살던 500여 년 전과 지금은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적 사고 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특히 자연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마치 고산이 방금 다녀간 듯이, 어디선가 큰기침하며 고산이 나타날 듯이
방문이 활짝 열린 석실.
깨끗하게 정리된 이 방 안에 침낭을 깔고 누워 달을 보고 싶다.
마루도 없고, 부엌도 없고 마당도 없는 정방형의 딱 한 칸짜리 석실,
마치 비박텐트를 연상시킨다.
방 밖 모든 곳이 마루요 부엌이요 마당이다.
그가 만일 지금 살아 있다면 그도 분명 비박산행을 즐겼으리.
그리고 이곳에 비박텐트를 세웠으리.
석실 주변엔 돌연못, 돌폭포, 돌샘이 줄지어 있다.
내려와 올려다 본 동천석실들, 모두 세 채가 있다.
동천석실이 있는 오운산
오운산
낙서재 주차장
교장 선생님 부부는 격자봉 등산을 위해 길을 떠났고
우리는 주차장 앞 폐가 마당에 앉아 일단 점심을 먹다.
곡수당과 낙서재 가는 길,
뒤로 보이는 산줄기가 바로 수리봉 격자봉이다.
곡수당.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휴식 공간으로 지었다는 곳.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일반적인 섬의 산보다 이곳 산들은 수량이 풍부했다.
낙서재.
윤선도가 살았던 살림집.
그가 보길도에 도착해 처음 지었던 건물이고 그가 숨을 거둔 곳도 이곳이니
그의 보길도 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징하는 곳이다.
이름하여 책읽기 좋은 곳이니
그의 삶은 책과 함께 하는 것.
한창 복구 사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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