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14(토)
[11시]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 갈등이 생긴다. 동호회에서 가는 유명산 비박 산행에 참가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의 비라면 참가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곧 비가 멈추었다. 오늘 밤 비가 온다는데.......다시 갈등이 생긴다.
[12시 10분]
오늘 주력팀은 9시, 양평역에 모인다. 그러나 먼저 도착해 산악자전거를 타기로 한 팀이 있어 전화를 하다. 만일 그 팀이 포기했다면 나도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오전 비 때문에 자전거는 포기하고 트레킹하려 지금 양평역에 모여 있단다. 그래, 떠나자. 까짓 비쯤이야.출발을 서두르다.
[2시 25분]
옥수역에서 중앙선을 타다.
[3시 25분]
아신역에 내리다. 역 이름이 이 근처에 있는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 이름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다. 이런....... 동료들은 저녁에 유명산 비박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혼자 대부산을 거쳐 비박지로 가기로 결정했다. 택시를 잡아 타고 대부산 들머리로 가자고 했다. 뭐, 600고지 700고지 한다. 그러나 나는 양평군에서 나누어 준 산행 정보에 따라 신복리로 가자고 했다. 결국 오늘 고생을 자초하다.
[4시]
신복 3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다. 택시비 1만 8천원. 회관 옆에 있는 슈퍼 주인에게 물으니 들머리를 일러 준다. 그러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어가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말을 듣고 일말의 불안감이 생기다. 그래도 양평군에서 나누어 준 등산안내도를 믿고 출발하다.
마을회관
이날 내가 내린 곳이 a다. 37번 국도상에 있는 b에서 내려 출발했어야 했다. 택시 기사가 권한 곳도 b다. c는 배너미고개로 나중에 비박지를 향해 출발한 지점이고 별표는 비박지.
예전에 학교가 있었는가?
행글라이더 연습장도 지나고.......
귀곡산장도 지나고.......
토종 벌꿀장도 지나고......
펜션도 지나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오른쪽으로 올라 37번 국도로 올라서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주민에게 물으니 지나온 계곡 옆을 따라 올라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 한다.
갔던 길을 다시 내려와 계곡 옆에서 길을 찾아 보았다. 희미한 길이 보이기는 하지만 오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잡풀이 허리까지 온다. 게다가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물힘이 보통 아니다. 결국 포기하고 마을회관으로 다시 내려오다.
[5시]
마을회관 앞에서 양평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다. 이제 대부산에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옥천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배너미 고개로 가자고 했다. 어떤 고개 위에 올라 선행 팀과 통화해 보니 배너미 고개가 아니다. 기사가 통화를 해 보더니 아아, 600고지 하며 차를 돌린다. 그리고 도착한 곳, 분명히 배너미고개라는 팻말이 있다. 이런 제기랄. 나중엔 들어온 팀도 이 말을 했다. 이 고개가 분명히 배너미인데도 기사들은 600고지라는 명칭을 쓰고 있고, 일부 기사는 배너미고개를 다른 고개로 알고 있다고. 정말 운수 없는 날이다. 택시비 다시 2만원 지불. 그리고 임도를 따라 비박지로 향하다.
배너미고개. 택시 기사들도 이 지명을 헷갈려 했다.
[6시 25분]
비박지에 도착하다. 인테그랄디자인 실타프 2와 버가비비로 집을 짓다. 비가 내릴 것에 대비해 타프는 최대한 낮추어 설치하다.
너무 낮춘 탓에 잠자리에 들어가려면 기어서 가야 했다. 개고생.......
[7시 20분]
일행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저녁을 먹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늘 이런 때면 떠드는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9시 50분]
맨 마지막 팀에 문제가 생겼다. 회기역에서 달리는 지하철에 뛰어 든 사람이 있어 전철 일부 구간이 정체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출발을 못해 우왕좌왕하고, 한 사람은 운좋게 양평역에 도착, 혼자 비박지로 왔다. 꼼장어구이가 등장한다.음식을 왕성하게 먹는 습관에 길들여지지 않아, 이렇게 여러 명 함께 움직이는 비박시 내가 들고가는 음식이 늘 낯 부끄럽다. 새로 상이 차려졌지만, 자살한 사람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수명까지 행복하게 살다 갈 수는 없는 노릇일까?
[10시 20분]
맨 마지막 세 명이 도착하다. 비박지 마을이 다시 떠들썩하다. 집을 짓고 모여 앉아 푸는 배낭 속에 분위기가 일신하다.
[1시 20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다. 이미 일부는 잠이 들었고, 남은 넷은 쉘터 속으로 피하다. 이때 나는 쉘터로 가지 않고 그냥 잠자리에 들다. 타프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아름답다.
[모를 시각]
갑자기 섬광이 번쩍하여, 눈을 뜨다. 날카로운 천둥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전기선 타들어가듯 하늘을 가로지르는 번개가 번쩍인다. 그리고 타프가 찢어질 듯한 세찬 빗방울이 계속 이어진다. 소름이 돋는다. 배를 깔고 누워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집에서 벌벌 떨고 있을 써니가 생각이 난다. 지금 숲 속의 모든 동물들도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가끔 출몰한다는 멧돼지 역시 겁을 잔뜩 먹고 있을 것이다.원초적인 강력한 힘 앞에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는다. 애꿎은 몸만 뒤척인다. 하늘에선 계속 비가 쏟아지고 있다. 지독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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