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대절 버스를 이용해 사랑코트로 갔다. 3,40분 거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며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고산지대는 그 특성상 새벽에는 맑으나 오후가 되면 안개가 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그냥 가보기로 했다. 골목골목에서 아이들이 손을 내민다. 이때 잊지 못할 한 아이를 만났다.일행과 약간 뒤떨어져 가고 있는데 한 아이가 길을 막는다.
어디서 왔어?
한국.
오우! 나이스 컨츄리. 그런데 네 이름이 뭐야?
성. 그런 너는?
무나. 그런데 너 우리 가게에서 밀크 티 한 잔 하고 가면 안되니?
미안해. 친구들이 있어. 이따 내려 올 때 먹을게.
정말? 네 이름을 여기다 적어넣고 기다릴 거야.
전망대로 오르며 그 아이 모습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는데 그 아이는 자기 집 장사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보고 내려올 때 나는 무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사랑코트를 떠나 따실링 티베트 난민촌에도 갔다. 1950년 중국이 침략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지붕에 살면서 그 아래 세상과는 다른 체제와 삶을 영유했던 사람들. 물리적 힘이 부족해 오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나온 사람들. 그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우리들. 과연 우리는 문명시대에 살고 있는가?
사랑코트로 오르는 길
끝이 전망대다.
무나. 초등학교 6학년이다.
전망대 맨 위에 정자가 있다. 한켠에 앉아 우리들 사진을 찍어 달라고 데사랄 카메라를 주자 오히려 신기한 듯 매만지고 있는 아이들.
오후엔 시야 확보가 어렵다는데 운이 좋게도 그럭저럭 볼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또 한 아이. 다른 아이들은 무턱대고 '스위트,스위트'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전통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 내 스스로 관람료 삼아 초코렛을 꺼내야만 했다.
무나네 집. 무나가 없어 무나를 부르자, 어머니가 나왔다. 오를 때 내 얼굴을 보았던 어머니가 뒷방에서 무나를 불러냈다.
우리는 결국 밀크 티 7잔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기념이 될만한 물건 몇 개를 더 들고 나와 선전을 한다. 이 집은 식당도 있지만 어머니가 조그만 기념품 가게도 하고 있다. 기특하게 여긴 친구들이 몇 개의 기념품을 샀다.
기분이 좋아진 무나가 이벤트를 했다. 바람개비를 돌리며 포즈를 취해줬다.
우리를 배꼽 잡게 했던 건 아버지가 뒤늦게 이 이벤트에 동참!
영특한 아이 무나. 밝고 행복하게 크길! 헤어지며 또 만나자고 약속.
내일부터 저 곁을 향해 걸을 것이다.
티베트 난민촌 입구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던 분위기. 활기는 전혀 없고, 사람과 빈약한 구조물만 있었다. 착잡한 생각을 하며 난민촌을 둘러보았다.
저녁엔 거리로 나와 내일부터 있을 트레킹 준비물을 마련했다. 침낭은 대부분 서울에서 가져왔지만, 안 갖고 온 사람들은 산촌다람쥐에서 빌렸다. 옷이 필요한 사람은 짝퉁 노스페이스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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