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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시

겨울나기 //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2013년 1월 장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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