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잎사귀라 했거니
봄 새벽부터 가을 늦은 저녁 까지를
선 채로 귀를 열고 들어왔나니
비바람에 귀싸대기 얻어터져가며 세상의 소리 소문
다 들어 왔나니 그리하여 저 귀는
바야흐로 제 몸을 심지 삼아 불 밝힌 관음의 귀는 아닐까
이 가을날 물드는 나무 아래 서면
발자국소리 하나 관절 꺾는 소리 하나도 조신하여라
하나도 둘도 몇 십도 몇 백도 아닌
저 수천수만의 귀들이 경청하는 이 지상의 한 때
그러니 가을 나무 아래서는
아직도 상기 핏빛으로 남은 그리움이랑
발설하지도 못한 채 깊이 묻은 억울한 옛 사랑이랑
죄다 일러 바쳐도 좋겠다
이윽고 다 듣고는 한잎한잎 제 귀를 내려놓는 나무 아래서
끝끝내 말하지 못한 심중의 한 마디까지 다 들켜놓고는
이제 나도
말로써 하는 지상의 언어를 다 여의고
묵묵하게 또 한 세상 기다리는 나무로 돌아가도 좋겠다
2014년 10월 북설악 마산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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