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오를 곳은 없다
푸른 살들은 남김없이 제단에 바쳐졌다
내게 깃들던 것들은
모두 허공 속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움마저 단단하다
그러나 나는 유년처럼 설렌다
천 개의 태양이 지나간 길들을 되집어
나는 내 속을 돌고 있다
머릿속까지 타들어 가던 그 작열의 정점에서
불러다오, 푸르러서 서럽던 것들아
찬란하던 새벽의 불면들아
유예의 시간은 길었다
나를 지나가던 벌레 한 마리
그 작은 생의 떨림 하나까지 기록한 책장을
겨울 새떼들이 끝에서
끝으로 천천히 넘기고 있다
또 다른 길들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나는, 雪花 몇 송이로
상형문자 몇 자로
지금 버티는 중이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저 맑은 햇살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볼 때까지,
자벌레 한 마리
신의 손등 위에, 혹은 푸른 잎사귀 위에
슬며시 놓일 때까지
지리산 장터목 가는 길에,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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