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목)
대피소 출발(6:15)_ 천왕봉(7:20)_ 일출(7:33)_ 대피소(8:40-10:10)_ 소지봉(11:20)_ 참샘(11:40)_
하동바위(12:10)_ 백무동 탐방지원센터(12:55)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어라? 스마트 폰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짐을 풀어 헤쳐 놓
고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천왕봉에서 멋진 사진을 찍어 가족과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려 했는
데....... 일단 스마트 폰 문제는 뒤로 미루고 대피소를 출발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의 헤드 랜턴이 장관을 이룬다. 마치 푼힐 전망대를 오
르는 빛의 행렬과도 같다. 나는 일행들보다 조금 떨어져 걸었다. 일출 시각에 맞추어 천왕봉에 오르
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출보다, 일출 전 가장 추운 시간을 견
디는 주변 모습들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그러나 갖고 간 삼각대를 잊어 버리고 나간 탓에 사
진들이 흔들려 건진 것은 몇 장 뿐이다.
현재 온도 12도.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몹시 분다. 체감 온도가 뚝 떨어진다.
제석봉 근처에서
저 멀리 반야봉을 중심으로 걸어 온 길들이 뱀처럼 꼬리가 이어지고 있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달이 아직 하늘에 걸려 있다.
사람들은 모두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나간다.
뒤를 돌아다 보며 지는 달에게 사랑을 전한다.
광활한 구름바다 위에 황금빛 일출색이 퍼지고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은 바다만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구름바다도 물들게 한다.
우리 눈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사진기로 이쁘게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 아름다운 것은 사진기로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
가슴속에 간직할 뿐.
기다리던 사람들의 탄성 소리와 함께 드디어 해가 솟았다.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적어도 내게는 이 말이 옳지 않다.
우리 선조들이 덕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절을 하고, 무언가를 읊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분위기에 나도 휩쓸렸다.
요즈음 여동생의 마음에 깊은 병이 생겼다.
주위의 몇몇 사람들을 위해 마음으로 기도를 하다.
그 붉은 기운은 바다에도 구름바다에도 그리고 산 골짜기 등성이에도 골고루 뿌려지고 있었다.
태양빛의 그 평등함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그것이 무엇이든) 모두가 사랑과 행복 속에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가 떴지만 달은 무엇이 아쉬운지 아직도 이승에 머물고 있다.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산정묘지(山頂墓地) 1, 조정권
장터목대피소를 떠나기 전, 혹시나 해서 세석대피소에 전화를 했다.
어라? 내 스마트 폰이 그곳에 있단다.
잠시 갈팡질팡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침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친구를 장터목에서 만났는데, 그가 지금 세석으로 향하고 있다.
그분에게 연락해 스마트 폰을 찾기로 했다.
천왕봉에서 사진을 찍어 몇몇 사람들에게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스마트 폰을 산지 채 1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가 되찾았다.
비박산행을 끝내고 지하철을 탔다가 옥수역에서 환승하며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습득자가 우리 집 지하철 역까지 와 건네 주고 간 경우가 있었고,
이번 경우 아마 세석대피소 식당에서 점심을 준비할 때 배낭에서 떨어진 것을,
누군가 주워 대피소에 맡긴 모양이다.
세상은 살맛나는 공간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저 멀리 반야봉
백무동 하산길, 여느 길처럼 경사가 심하다.
백무동(백 명의 무당이 있는 마을)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전엔 백무동 계곡 곳곳에 치성을 드리는 민속신앙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 산행에 메고 간 그레고리 z40, 개량형이라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
그러나 용량이 조금 적은 듯했다. 차라리 트리코니를 메고 갈 걸.
하동바위, 바위가 하동 방면을 향하고 있다.
하산 종착 지점이 가까워지면서 풍광은 초봄이다.
백무동 탐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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