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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살아가는 이야기

연극, 대학살의 신

 

 

 

2011.12.25(일)

 

 

무척 쌀쌀한 크리스마스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행동 반경이 좁아지는 듯하다. 날씨가 추워도 이것저것 해

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연극 하나에 간단한 외식으로 끝내자고 아내가 먼저 제안한다.

 

 

2009년 토니상 연극 부분 최우수상을 거머쥐었고, 브로드 웨이 무대까지 올랐던 작품이다. 무대 변화나 장

막 전환이 없고, 등장 인물의 변화도 없는 특이한 연극이다.탄탄한 대사 구성이나 배우들의 좋은 연기 없이

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작품이다.

 

 

열한 살 두 아이의 싸움이 발단이 된다. 가해 학생의 부모(박지일,서주희)가 피해 학생의 집(이대연,이연규)

에 찾아 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사과를 하러 온 측과 사과를 받으려는 측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

르며 대화가 오간다. 특히 아프리카 문제를 다루는, 진보적 사상과 추상적 언어로 무장한  아마추어 작가 이

연규와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가치관의 깐죽이 변호사 박지일 사이에 팽팽한 말싸움이  벌어지고  이대연과

서주희는 그것을 완화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대연이 내놓은 보드카를 마시고 서주희가 구토를 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마음 속에 숨겨 왔던 이야기를 꺼내며 갈등이 각각의 부부 사이로 퍼졌다 다시 부부대 부

부로 옮기는 등 모든 상황이 뒤죽박죽으로 변한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애들 폭력이 불러온 어른들의 말싸움'을 구경한 격이다. 우리는 평온할 때 작고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편이다. 그러나 이해가 걸린 싸움이 벌어질 땐 그렇지 못하다.제 3자 

입장에서 보면 평상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 교양으로 치장했지만 그 근원에 있는 비이성적 사

고와 행동을 통렬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 이 극의 지향점인 듯하다.  그러나 뭐 이렇게 심각히 받아들일 필

요 없이 말꼬리에 말꼬리를 잡고 벌이는 네 성인의 말싸움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재미다. 싸움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어디 있든가.

 

 

한 가지 의문으로 남는 것은 아프리카 문제다. 극이 시작하면서 울려 퍼지는 아프리카 토속 음악, 그리고 극

중 몇 번 등장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언급, 작가가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 같은데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아프

리카에 대한 서구 열강의 폭압?  아프리카의 원초성에 대한 동경의 암시?  그 어떤 것도 열쇠를 찾지 못하겠

다. 분명 고리가 있을 텐데.

 

 

이런 부류의 연극, 무대 변화가 한 번도 없고 장막 전환도 없고,  무대에 처음 오른 연기자 네 명이 연극이 끝

날 때까지 책임지는 연극은 처음 보았다. 관객을 몰입시킬 정도의 대사의 전개나 탁월한 연기력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연극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한눈을 전혀 팔지 않은 채 몰입할만큼 재미있었다. 귀를 쫑긋 세

우게 만들었던 대사의 맛깔스러움이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탁월했다.  그러나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압

권이었던데 비해 이연규씨의 연기력은 다소 평면적이고 평범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 극을 기초로 해 노만 폴란스키가 영화를 제작 중이란다.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의 이 극을 어떤 모습으로

기승전결을 펼쳐낼지 자못 궁금하다.

 

 

 

 

 

 

 

 

공연장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일주일 전 예약을 했는데, 1층 지정석은 매진이다.

2층석을 예매하고, 공연 30분 전에 줄을 섰다가 두 번째로 입장.

1층 구석보다는 그래도 나은 자리에서 관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