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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살아가는 이야기

[lx5] 눈 온 날의 일기

 

 

 

2010.12.28(화)

 

 

금년 겨울 들어 첫눈도 왔고, 그럭저럭 눈도 몇 번 왔지만, 눈다운 눈이 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에 눈을 뜨니 눈이 수북 쌓여 있다. 기분이 그럴싸해진다. 차를 버린 채 집을 나섰다. 길이 다소  질퍽거린

다. 영상의 기온인 것 같다. 급 실망.

 

 

택시를 타고 요즈음 다니고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차도의 눈들도 이미 더럽혀져 있다. 오래 전부터 비염을

달고 살았다.그런데 한 달 전부터 밤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악화가 되어 수술 생각을 하고 병원

을 찾았더니 급성 축농증까지 걸렸단다. 약물로 축농증을 치료한 후, 요즈음은 비염을 치료하는 중이다.수

술까지는 필요가 없단다. 찬 공기 알레르기가 있어 완치는 힘들지만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 다소  완화하는

조치는 할 수 있단다. 그냥 안고 살아야 할 모양이다. 지난번까지는 3,4일 치 약을 처방하더니 이번에는 일

주일 처방이다. 이 조그마한 변화에도 마음이 편해진다.

 

 

병원을 나서 뚝섬유원지로 향했다. 오늘 점심 식사를 약속한 친구가 있다.  아침에 일정을 확인하는 전화를

할 때 머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한강변에 가서 눈구경하며 식사를 하자! 가끔 눈이 수북 쌓이

는 날이면 그곳으로 나가 눈구경을 하곤 했다. 약속 시간에 나타난 친구는 이곳이 처음인지라 감탄을  연발

한다. 살아 있는 눈을 보고 어찌 감흥이 없을 수 있겠는가. 뽀드득  소리를 벗삼아 걸어  도착한  레스토랑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자욱한 안개 속 건너편엔 잠실종합운동장과 강남의 고층 빌딩들이 유령처럼 서 있다.강 위엔 얇은 유빙들이

깨진 유리처럼 반짝이고 있다. 다리를 건너 지하철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선,  역에 긴 꼬리를 달고 정차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소양강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지하철은 없었지만 긴 다리 위에서 차량들이 안

개를 헤치고 달려왔다. 지금의 한강보다 훨씬 두꺼운 얼음이 만들어졌고 그 위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무리 안에서 나도 외발 썰매를 타곤 했었다. 친구와 밖 풍경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

기를 나눈다. 어찌 보면 낭만적인 이런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도 커다란 행운이다.

 

 

친구와 헤어지고 회사로 출근하는 길, 지하철 차창 밖으로 눈들이 보인다. 한강둔치에서 보았던 그런 살아있

는 눈들이 아니다. 차량과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상처를 입은 눈, 활기를 잃고 서서히 삶을 마감하는 눈,본래

의 모습인 물로 돌아간 눈으로 뒤범벅이다. 얼마 전, 상당 기간 노환으로 고생하시던 장인 어른이 눈을  감으

시고 흙으로 돌아가셨다. 내 삶도 언젠가는 그러하리라.그 순간까지 한강둔치에서 보았던, 햇빛을 받아 영롱

이던 눈으로 살고 싶다.

 

 

 

 

 

 

집을 나섰을 때, 눈들이 힘을 잃고 있어 급실망했다. 그러나 택시를 타러 갈 때 바라본 매봉은 살아 있었다. 한강둔치에 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작은 설렘이 일다.

 

 

 

 

 

 

 

 

 

 

 

 

 

 

 

 

 

 

 

 

 

 

 

 

 

 

 

 

 

 

 

 

 

 

 

 

 

 

 

 

 

 

 

 

 

 

 

 

 

 

 

 

 

 

 

 

 

 

 

 

 

 

 

 

 

 

식사를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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