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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길/제주올레2009

제주올레, 길을 잃을까 두렵다

 

 

몇 년 전, 캐나다 뱅쿠버에 가서 잠시 머문 적이 있다. 당시 곳곳에 만들어진 트레일 코스를 걸으며,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보다 나으면 나았지, 모자라지 않는 제주올레가 우리나라에도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입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제주올레가 금년 봄 방송을 타면서 제주를 찾는 올레꾼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다른 지방 자치단체들에게도 자극이 되어 지리산 둘레길, 관동팔경길, 강화도 순례길, 그리고 어제 오늘 발표된 북한산 둘레길 등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제주올레는 얼마 전부터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갈등과 잡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어떤 신문 기사는 '놀멍 쉬멍'이란 제주올레의 기치를 '싸우멍 다투멍'이란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제주올레는 산티아고길에서 영감을 얻은 서명숙씨가 기획하고 실행에 옮겨 열리기 시작한 길이다. 처음에는 민간인들이 주도하여 길을 열었으나, 그 경제적 효과가 입증되자 지방과 중앙의 행정 기관이 관심을 갖고 지원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럴듯하게 진행이 되었으나, 생각보다 더 큰 성공(?)이 문제의 불씨가 되었다.

 

 

제주도 의회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효율성 공정성이라는 이유를 내걸어, 관 주도로 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안을 내놓았다. 제주올레는 현재 서귀포를 중심으로 열려 있는데, 제주시를 중심으로 한 올레는 관 주도로 하고, 기왕에 만든 올레 코스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게다가 통행세까지 받겠다는 구상을 내놓아 과연 그들이 제정신인지 의심이 갔다. 물론 이런 계획들은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만일 관이 주도를 하게 된다면, 예산이 만들어질 테고, 관 주변에 업자들이 모여들 것이고, 공무원들은 마련된 예산을 쓰기 위해 어떻게든 돈이 드는 계획을 세울 것이고, 흙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될 것이다. 게다가 지방 유지들인 제주도 의회 의원들은 자신 또는 자기 출신 지역의 이익과 관계되는 곳으로 길을 트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할 것이다. 또 이럴 수도 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자신의 길로 코스를 트게 한 다음, 도에게 자신의 땅을 매입하라고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자연을 좋아하고,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사업에 익숙한 관의 기준으로 제주올레가 만들어질 경우, 그 길은 그렇고 그런 길이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최근 불거진 또하나의 문제는 토지 주인들의 반발이다. 제주올레는 특성상 사유지를 많이 거치게 된다. 지난 2월 제주올레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친구와 나는 벌써 이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사유지를 기꺼이 내놓은 분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만일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게 되었을 때도 이러한 환경을 그냥 유지될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다. 현재 몇몇 코스에서 토지 주인들이 길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1코스 말미오름의 말목장이다. 이 코스 끝날 즈음, 말이 도망가지 않도록 출입문을 잘 잠궈 달라는 부탁의 표지가 있었다. 이렇게 사유지를 걷는 자들을 위해 내놓은 주인에게 무척 감사했다. 그런데 최근 이 부분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잔디가 사라지고 맨땅이 드러난 곳이 많아 착잡하다. 좋은 뜻으로 길을 내놓았던 주인의 심정은 어떨까?

 

 

 

 

 

 

최근 야자수밭 주인이 길을 막았다고 하는데 이 곳이 아닐까 싶다.

 

 

 

 

 

이 둘째 문제의 핵심은 토지 주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레꾼들에게 있다. 제주올레가 유명세를 타면서, 자연과 하나되어 걷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닌, 좋은 관광지로 여기고 제주올레를 단체로 몰려와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그들은 무밭과 마늘밭에서 농산물을 훼손하고, 야자수밭에 들어가 각종 오물을 버리는 등의 몰상식한 행동을 저질러 토지 주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혼인지 근처 무밭 근처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무료 무 제공대'.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다.

 

 

 

 

 

경쟁과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주 5일 근무제도가 정착이되면서 붐을 이루는 등산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처럼 누가 더 빨리 더 높게 가는가에 관심이 쏠리는 사회. 그 분위기 속에 이단아처럼 나타난 제주올레. 느림과 수평적 여유를 가르쳐 주고 있는 제주올레. 길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그 길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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