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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길/산행

설악산, 오색약수_ 대청봉_ 봉정암

 

* 산행일 * 2007.6.16(토)

 

* 산행 코스 * 오색약수 통제소(11:40)_ 제1쉼터(12:20)_ 설악폭포(1:15)_ 제2쉼터(2:11)_ 대청봉, 휴식(3:05_ 4:15))_ 중청대피소(4:35)_ 소청(5:00)_ 소청대피소(5:15)_ 봉정암(5:35)

 

* 산행 시간 * 5시간 55분

 

 

서울 강변역을 7시 10분 경 출발한 대절 버스가 강원도 인제에 도착한 시각은 9시 50분 경.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른 점심을 먹었다.말이 점심이지 아침 식사나 마찬가지다.10시 40분, 다시 출발해 오색약수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30분, 금년 들어 두 번째 설악산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파르다.오색약수 통제소의 표고가 340이고 대청봉은 1709.9다.서너 시간 안에 1350을 올라야 하니 가파를 수 밖에 없다.오색약수에서 대청봉까지, 제 1쉼터,설악폭포,제 2쉼터가 일정한 간격으로 있다.1쉼터까지는 가파르고,설악폭포까지는 완만하고,설악폭포에서 2쉼터까지 가장 가파르고,2쉼터를 지나면 처음엔 가파르다 중간 이후엔 완만하다.안내도에는 각 구간 등산 소요 시간을 한 시간으로 잡아놓고 있다.따라서 일반적으로 오색약수에서 대청봉까지 4시간 정도 거리로 본다.그러나 빠르지 않은 내 걸음으로 오늘  3시간 25분 만에 오른 것을 보면 이 시간표는 다소 넉넉하게 잡은 듯하다.

 

 

[제 1쉼터...그러나 쉴 자리는 없다]

 

 

[설악폭포...오른쪽에 계곡이 있다.누군가 그 계곡 사진을 설악폭포라면서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본 적이 있다.그러나 설악폭포는 그 계곡을 따라 50여 미터 내려가야 볼 수 있다고 하나 찾는 이가 없다.오색약수에서 출발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물이기 때문에 여기서 식수통을 채우는 사람들을 보았는데......잠시 오르다 보니 그 계곡 상류에서 발을 씻는 사람들을 보았다.나는 이 계곡에서 15분 정도 쉬었다.]

 

 

 

 

  [이 코스는 별로 전망이 좋지 않다.간간히 시야가 트였다가 다시 닫히곤 한다.]

 

 

 

 

사실 이 코스의 조망은 설악산 코스 가운데 가장 나쁜 곳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대청봉에 빨리 오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내세울게 없다.대청봉 오르기 10여 분 전,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키가 작은 전형적인 고산 식물들 군락지가 나온다.처음 설악산에 올랐을 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이 곳이 전혀 다른 곳임을 깨우쳐 주었던 곳이다.

 

 

 

 

대청봉! 지난 5월 19일에 왔었다.그러니 채 한 달이 안 되어 다시 밟게 되었다.그 때와 비교하여 여러 모로 달랐다.당시는 안개가 끼어 조망이 좋지를 않았다.그러나 오늘은 동서남북 거칠 것 없이 확 트인 세상이 나를 맞이한다.멀리 동해까지 보이고 설악산의 속살들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났다.

 

 

 

 

 

 

 

 

 

 

 

발 아래 죽음의 계곡이 있고, 그 옆에 천불동 계곡, 건너편 만물상,왼쪽으로 공룡능선 그리고 저 멀리 울산바위가 우람하게 서 있다.설악산은 동해와 내륙을 경계로 하는 산맥이기 때문에 일기 변화가 무척 심한 곳이다.이렇게 날씨가 화창한 행운을 얻기가 힘들다.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멋진 풍광에 감탄을 한다.

 

 

 

 

나는 여기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일행 가운데 늦게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나머지 일행이 올라온 후,중청으로 방향을 틀었다.광활한 모습이 더위를 식혀준다. 

 

 

[등산로 가운데 건물이 중청대피소다.그리고 저 멀리 원형 구조물이 있는 곳이 중청.중청 산허리를 끼고 희미한 길이 있다.그 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내가 지난 달 걸었던 서북능선이고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은 오른쪽이다.] 

 

 

 

 

 

 

 

[뒤에 보이는 바위들의 연결이 공룡의 등뼈를 닮았다는 공룡능선이다.] 

 

 

[대청봉 바로 아래에 있는 '눈잣나무' 군락지.설악산 이북의 높은 산 정상 근처에서 자라는 나무로 키는 4,5미터다.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옆으로 기면서 자란다.중국에서는 '천리송' 서양에서는 '난쟁이소나무'라고 한다.]

 

  

[중청대피소를 지나며 되돌아 본 대청봉]

 

 

중청대피소에서 쉴만도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정상에서 너무 시간을 끈 탓이다.잠시 후 서북능선과의 갈림길에 섰다.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소청으로 향한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날 서울은 무척 더웠다고 한다.물론 설악산도 더웠다.그러나 산이 높은 탓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더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게다가 능선따라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상쾌하기까지 했다.

 

 

[가운데 뾰족한 바위들의 연결이,용의 이빨, 용아장성릉이다.저 입구에 봉정암이 있다.용아장성릉 왼쪽이 구곡담계곡이고 오른쪽이 가야동계곡이다.나는 오늘 밤 봉정암에 머문 후, 내일 구곡담계곡을 따라 하산할 것이다.]

 

 

 

 

[뒷배경이 소청으로 가는 길이다.산행로 끝나는 지점이 소청이고, 그 너머 바위들의 연결이 공룡능선이다.공룡능선 왼쪽의 바위들은 용아장성]

 

 

[소청에는 특별히 이 곳이 소청임을 나타내는 팻말이 없이 길 이정표만 있다.]

 

 

 

 

 

소청대피소에 사람들로 바글거린다.어쩌면 6월 초중순이 설악산 산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일 수도 있다.비를 만날 확률이 적은데다 아직 무더위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용의 거대한 이빨이 코 앞에 점점 다가올 즈음 푸르고 깊은 나무들 사이에서 봉정암이 모습을 드러낸다.불자는 아니지만 봉정암,오세암,말로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해주는 단어다.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설악산의 대소 암자 중 제일 먼저 창건된 것이다.봉정암이란 이름은 신라 애장왕 때 조사 '봉정'이 기거했다는 설과, 암자 뒤의 바위가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이란 두 가지 설이 있다.

 

 

 

 

 

  

봉정암은 양산 통도사,오대산 상원사,태백산 정암사,사자산 법흥사와 함께 우리 나라의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다.이 다섯은 신라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나누어 가진 곳이다.그렇기 때문에 좁은 암자이지만 불자들로 가득하다.게다가 등산객들도 합세해 좁디 좁은 공간에 발디딜 틈이 없다.

 

 

 

 

 

 

봉정암은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요사'를 마련해 두고 있다.사무실에 가, 접수를 하면 방 배정을 해 주고 식사를 대접해 준다.밥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주고 그 위에 오이 두 세 조각을 놓아 준다.아침에는 주먹밥 하나를 더 준다.접수를 할 때 시주의 명목으로 1만원을 낸다.그러나 나는 이런 과정을 밟지는 않았다.낙산사 주지이신 정념 스님의 덕택으로 우리 일행은 독립적인 요사를 얻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을 일찍 먹은 후, 오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특이하게도 기단부가 자연 암석이다.저 탑에 진신사리가 있다.많은 사람들이 탑 앞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기도처의 경관이 기도의 근본적인 것과 연관이야 없겠지만 너무나 멋진 기도처다.

 

 

 

 

 

 

 

요사로 돌아왔다.그러나 잠이 오질 않는다.뒤척이다 다시 오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봉정암에서의 밤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봉정암에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한다.밤 10시면 자가 발전기를 중지하기 때문에 칠흑같은 어두움이 찾아든다.무수히 쏟아지는 별을 보며 카메라 삼각대 준비 안 한 것을 자책해아만 했다.

 

 

 

 

 

 

바위 곳곳에서 사람들이 좌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나도 내 자신을 되돌아 보며 바위 위에 걸터 앉았다.지난 세월 있었던 내 삶의 모순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그 순간 깊이 모를 회한에 빠져들었다.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어디 하나둘인가. 게다가 알고 있는 그 하찮은 것들도 실천하지 못한 것이 어디 하나둘이겠는가.세상이 어두움에 파묻힐수록 내 마음의 회한도 더욱 깊어졌다.

 

 

 

 

빛과 어둠이 맞닿아 있고,사랑과 미움이 이웃하고 있고, 만남과 이별이 서로 기대고 있고......삶과 죽음도 공존하고 있고.......끝없는 서러움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찾아들었다.

 

 

 

 

사람으로 순간을 산다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이 짧은 삶 속에서 누구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모든 사물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더우기 몸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아직도 여기 이승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 속에서

이제 남은 시간은 도대체 얼마인가?

고즈넉이 사방에 깊이 모를 침묵이 있고,

그 안에서 참으로 외로운 자만이 외로움을 안다.

보아라, 허물처럼 추억만 두고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양성우,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봉정암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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