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2(일)
6시 27분,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성판악에 도착한다.
오늘은 한라산에 오른다.
예전엔 쉽게 생각했던 한라산 등반이지만 이제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등반 예약이다.
20여 일 전, 한라산 등산을 계획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백록담 cctv를 보려다 깜짝 놀랐다.
금년 2월 1일부터 예약 없이는 백록담에 오를 수 없다.
놀랍게도 내가 등반 계획을 잡았던 1일은 이미 예약이 모두 찼고
2일엔 1000명 마감에 800명 정도가 예약을 했다.
즉시 예약을 했다.
둘째는 기후다.
9년 전 돈내코로 올라 영실로 내려 온 적이 있다.
평궤대피소를 지날 즈음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으니 하산하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고집을 피우고 그냥 올랐다.
그날 말 그대로 사선을 넘어 내려왔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한라산 겨울 등반은 할 수가 없다.
이틀 전 한라산 등반이 통제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좋다.
셋째는 내 몸의 컨디션이다.
작년부터 고관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오랜 산행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게다가 최근엔 고관절 문제로 산행을 제대로 한 적이 없어 이 긴 레이스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올라 본다.
문제가 생기면 그곳에서 내려오기로 하고.
6시 50분 경 성판악을 출발했는데, 2 30분 지나니 밝아지기 시작한다.
예상했던 대로 등반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판악 입구에서 우왕좌왕한다.
금년엔 산에서 눈구경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 맛에 겨울산행을 한다.
8시 속밭대피소 통과.
심장에 부하가 걸리지만 쉬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다.
거칠었던 숨이 차츰 안정을 찾는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이곳에서 사라오름에 오른 후 하산할 생각이었다.
엉덩이 부분의 고관절이 다소 불편하지만 그대로 통과한다.
나이가 더 들어 불편한 몸이 되면 이곳을 목표로 등산할 수도 있겠다.
8시 45분.
11시 10분 진달래밭대피소 도착
간식 및 휴식 후 11시 30분 출발.
이곳을 목표로 왔던 사람들은 그냥 내려간다.
옛날과 달리 한라산 대피소에서 먹을거리를 판매하지 않는다.
삼각김밥과 빵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성판악부터 계속 닫혀진 숲길을 걸어왔다.
이제 2,30분 이면 넓은 세상을 보리라.
힘이 솟구친다.
정상이 보인다.
그리고 왼쪽에 줄을 지어 오르는 산객들도 보이고.
뒤를 돌아다 보면 저 멀리 구름이 띠를 이루고 있다.
축복 받은 날이다.
하늘은 푸르고 발 아래는 구름바다, 말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신경 쓰이던 고관절도 치유된다.
그리고 12시, 백록담 앞에 선다.
한 번 가 본 백두산 천지에선 감동이 있었고,
몇 번 올라와 본 백록담에선 늘 쓸쓸함이 있었는데,
오늘은 황홀하다.
흙이 드러났던 백록담 아래가 백설로 덮여 있다.
스마트폰으로 한라산 백록담을 담아 가족들에게 보낸다.
12시 30분 백록담 출발, 관음사로 향한다.
나의 첫 한라산 등반은 성판악 출발 관음사 주차장 하산이었고,
그후 한라산 백록담 등반의 당연한 코스였다.
그런데 오늘 보니 성판악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아아.......구상나무.
점점 사라지고 있다.
1시 왕관바위 위.
왕관바위 위 공터에 서서 바라본 모습이다.
1시 20분 용진각 현수교
왕관바위
1시 40분 삼각봉대피소
삼각봉 일명 연두봉(솔개의 머리)
1982년 2월, 전두환이 제주도에 온다.
그를 경호하기 위해 특전사 수송비행기가 이동 중 이곳에서 추락해
53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 불행한 사고는 당시 언론 통제로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는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을 특전사요원들이 해야만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3시 10분 탐라계곡대피소
탐라계곡과 이어지는 돌길.
길을 정비해 놓아 예전보다 훨씬 걷기 편하다.
그래도 오랜 산행에 다리가 지쳐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4시 30분 관음사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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