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4(수)
상암동 월드컵공원 주차장.
상암동에 있는 하늘공원에 다녀왔다.
억새를 구경하러 와서 갈대부터 구경한다.
월드컵공원에 도착한 시각은 4시 직전, 해가 서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어 길게 그림자가 졌다.
내가 하늘공원을 걷는 동안 내 그림자만 동행인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한 명의 친구가 또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친구, 영국 국적 그러나 핏줄은 한국인.
약 한 달 전 한국에 들어와 지리산 자락과 부산에 머물다 서울로 올라왔는데,
오늘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하늘공원을 함께 걸었다.
대학에서 휴가를 내어 두 달간 한국을 방문 중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맞이하는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앎이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될 때,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있게 알게 될 때 느끼는 희열은 무척 크다.
모르던 사람을 알게 되는 것 역시 인생의 커다란 기쁨이다.
더욱이 감정선이 얼추 비슷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미 인터넷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있었던 탓인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함께 걸으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내 마음속엔 그냥 친구다.
서울억새축제는 이미 21일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하늘공원의 억새는 아직도 울고 있다.
번잡했던 축제 기간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걷기 좋은 때다.
아침에 날씨가 잔뜩 흐려 이 친구에게 멋진 억새들을 보여주기 힘들겠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오후가 되자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제는 조금 쌀쌀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선선하다. 날씨가 기가막히게 받쳐주었다.
하늘공원 오르는 길, 2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지금 내려오는 사람들은 뭐야? 조금만 있으면 노을을 볼 수 있을 텐데.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던 날
북한산에 다녀올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산에 자주 다니지 않는 이 친구에겐 오늘의 이 코스가 더 좋은 것 같다.
멋지다. 사진도 잘 나올 수 있었던 날씨.
점점이 박힌 단풍이 그림을 완성해 준다.
계단을 올라서 억새밭 사이로 걷는다.
바람은 결코 억새를 꺾지 않는다.
바람은 생을 마감하는 억새의 추억을 흔들어 깨울 뿐이다.
그 순간 억새는 서걱서걱 운다. 모든 추억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리라.
바람과 억새는 그렇게 어울려 노래를 하고 그렇게 이별을 한다.
해가 점점 더 기울고 있었다.
팔딱이는 은빛 비늘로 뒤덮였던 억새밭이 황금 물결로 바뀌며 장관을 이룬다.
억새는 그렇게 산다.
햇빛이 들면 드는대로 해가 기울면 기우는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그렇게 산다.
전망대에 올라 본다. 동서남북 거칠 것이 없다.
북한산과 내가 얼굴을 맞댄다.
어머님이 그립다.
어머님 살아계실 때 손 잡고 억새밭 걷는 것을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버님이 그립다.
군 시절 돌아가셔서 큰 기쁨 한 번 드리지 못했던 아버님이 그립다.
이 친구와 이야기 도중 우연치 않게도 부모님 고향이 같은 황해도라는 사실에 놀라며
돌아가신 두 분 얼굴을 억새밭 사이에서 본다.
억새의 털을 만지며 친구가 말했다. 엮어서 옷을 만들면 좋겠어.
손으로 쥐어본다.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가 폭신하면서 까실하다.
어린 시절 어머님이 짜 주신 털옷을 입었을 때 폭신하고 까실했던 그 느낌이 온몸으로 퍼진다.
억새가 운다. 나도 운다. 나는 고아다.
그렇다.
단풍은 그 화려함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면서 희열을 준다.
억새는 그 쓸쓸함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많은 것을 그리워하게 한다.
이 친구는 다시 서울을 떠나 20여 일 남도여행을 간다고 한다.
아마 돌아올 때쯤이면 억새꽃은 모두 지고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바람메 흩날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친구와 함께 엮었던 추억은 앞으로도 계속 피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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