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앉았던 자리가 그대의 지친 등이었음을 이제 고백하리.그대는 한 마리
우직한 소. 나는 무거운 짐이었네. 그대가 가진 네 개의 위장을 알지 못하고
그대를 잘 안다고 했네. 되새김 없이 저절로 움이 트고 꽃 지는 줄 알았네.
그대가 내뿜는 더운 김이 한 폭의 아름다운 설경(雪景)인 줄 알았네. 그저
책갈피에 끼워 둔 한 장의 묵은 추억으로 여겼네. 늦은 볕에 앉아 찬찬히 길
마에 해진 목덜미를 들여다보니 내 많은 날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알겠네.
거친 숨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성자를 떠올리네. 퀭
한 눈 속의 맑은 눈빛을 생각하네. 별이 식어 그대의 병이 깊네.
선자령에서, 2012년 3월
'NP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정묘지( 山頂墓地 ) 1 // 조정권 (0) | 2013.01.04 |
---|---|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 정호승 (0) | 2012.12.21 |
담쟁이 // 도종환 (0) | 2012.12.07 |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0) | 2012.11.23 |
선암사 // 정호승 (0) | 201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