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7(일)
동두천역 출발(9:58)_ 신탄리역(10:42)_ 매표소(11:08)_ 대광봉(12:53)_ 점심(13:14-45)_ 고대산 정상(13:54)_ 신탄리역(15:40)
고대산에 다녀왔다.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산 가운데, 북한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이다. 동두천에서 고대산이 있는 신탄리까지 매 50분에 열차가 떠난다. 시간 계산을 잘 해 집을 나섰지만, 9시 52분에야 동두천에 도착.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쪼옥 빠졌으나, 다행히 열차가 지하철 손님을 기다렸다 58분에 출발하는 바람에 가까스레 갈 수 있었다. 이미 올라탄 사람들에게 미안한 듯, 운전사가 연발에 대한 양해를 구한 후, "열심히 달려보겠다"는 말로 시골 열차의 정겨움을 풍긴다. 열차 안은 산행객들로 빽빽하다.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땐, 추위에 깜짝 놀랐다. 분명 기상청에서 날씨가 풀린다고 예고했는데 그렇지를 않았다. 그러나 능선에 올라섰을 때부터 추위가 풀리면서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산행 코스는 3개다. 1코스는 밋밋하고, 3코스는 가파르면서 조망이 별로다. 2코스는 적당한 경사도에 경관이 뛰어나다. 나는 오늘 2코스로 올라 3코스로 내려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신탄리역에서 매시 정각에 동두천발 열차가 뜬다. 앉아서 편히 오다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종점인 동두천역 바로 전인 소요산역에서 내렸다. 소요산역이 출발점인 전철이 있기 때문에 앉아서 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이 내리자 역에서 '인천발 전철이 한참 후에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고, 우르르 다시 올라타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신탄리역
고대산 매표소 옆에 있는 등산안내도. 동네 주민들이 입장료 1000원을 받는다. 그러나 매표소 좌우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관리인이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통제를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를 끊지 않고 올라갔다. 사실 그 돈을 받아 무엇을 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2코스를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좋은 전망들이 나타난다. 특히 칼바위능선을 따라 걸을 때 보이는 조망은 무척 뛰어나다.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높지 않아 웅장한 모습은 없지만,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아기자기한 모습은 안나푸르나에서도 볼 수 없다.
대광봉
이런 모습이 차가운 바람에도 겨울산을 자주 찾게 만든다.
독수리. 이분은 아무런 제한 없이 남북을 오가신다.
고대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
확실히 겨울산이 매력적이다. 오늘 산행을 할 때,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이 산은 겨울이 매력있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산은 겨울에 매력이 있다.
점심이다. 집을 나설 때 써모스 도시락에 누룽지 1인분을 넣고, 뜨거운 물을 약간 부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때 써머스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넣고 잠시 기다림.
이것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연양갱과 에너지 바 하나를 먹었다. 간단해서 좋다.
저 멀리 사람들이 보이는 곳이 고대산 정상
정상 바로 밑에서 본 걸어온 길. 끝이 대광봉이다.
가운데 넓은 들판 끝이 궁예가 태봉국의 수도로 삼으려던 곳. 왼쪽에 백마고지가 있고, 그 너머가 북한땅이다. 신라인 궁예의 꿈과 좌절은 비장하고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그 깃발 아래 목숨을 잃은 수많은 병사들의 넋은 슬프다. 그리고 천년 뒤 벌어진 더욱 커다란 비극. 생명이 소중한 것이란 말은 그냥 종이 위에 쓰여진 낙서인지도 모른다.
저 너머에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가까운 친족들이 살고 있다. 아마 두 분은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다. 오늘 산행을 오며 특별히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상에 서서 북쪽을 보니 자연스레 그분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며, 해방 전후사에 대해 읽었던 책들 그리고 분단을 막겠다며 움직이셨던 분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과연 우리는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하산하는 3코스는 상당히 가파르다.
종착점은 출발했을 때와 같은 매표소 지점이다. 고대산은 최전방에 위치한 특성 탓에 산행 코스가 여기저기로 나 있지 않고 딱 3개 코스가 매표소를 중심으로 엮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