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고향 선배가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했다.
이름하여
Montblanc Meisterstuk Homage A Frederic Chopin.
몽블랑이 쇼팽을 오마주 하여 내놓은 만년필인데
지금은 생산하지 않고 있다.
와인색이며 몽블랑 만년필 기준 P145 크기다.
(찬조 출연: 버트랜드 러셀 자서전)
사실 이 만년필을 받았을 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쁨보다. 만년필에 대한 옛 추억이 더 크게 다가왔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파카 만년필을 사주셨지만,
길들이기에 실패하면서 내 손을 떠났다.
그후에도 몇 번 다시 손에 잡아보았으나 역시 간수를 잘못하면서 만년필은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오히려 실용적인 볼펜, 샤프와 더 가까워졌고,
이 선물을 받을 당시엔 컴퓨터 자판이 주된 글쓰기 도구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물 받은 만년필에 잉크를 넣고 첫 문장을 쓸 때 깜짝 놀랐다.
길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백지 위를 걸어가는 것을 보며
기술의 발전에 놀랐다.
몽블랑 홈피에 따르면
위대한 작곡가가 심혈을 기울여 교향곡을 만드는 것처럼,
숙련공이 100단계 이상을 거쳐 펜촉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고 선전한다.
조금 과장된 것이겠지만 그래도 좋은 만년필임은 분명하다.
이 만년필로 첫 문장을 썼을 때,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고급 만년필에 대한 감탄......
물론 이런 것들도 다가왔지만 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조그만 사건이 일어난다.
나의 머릿속 생각이 까만 잉크를 타고 백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것을 보면서
황홀감이 밀려왔다.
결국 이 만년필 한 자루 때문에
연필 찾아, 연필 따라 삼만리를 걷게 되고
무엇인가 긁적일 때 컴퓨터보다는 연필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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