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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베트남

베트남여행 12일(1) 벤탄 시장_ 통일궁_ 전쟁 박물관

 

 

2013.12.7(토)

 

 

 

오늘의 일정

(1) 호치민 시내 관광의 양축인 통일궁과 전쟁 박물관을 둘러본다.

(2) 노트르담 성당_ 중앙 우체국_ 오페라하우스_ 인민위원회 청사_ 퍼24(점심 식사)_

사이공 강_ 호치민시 박물관_ Din Ky(저녁 식사)

 

 

 

 

 

 

 

 

 

 

 

 

 

도어 맨만 활기찬 것이 아니라 숙소의 모든 사람들이 활력적이다.

특히 식당 여매니저는 에너지로 똘똘 뭉쳐 있다.

음식맛도 뛰어나고....... 매력 만점의 숙소다.

 

 

 

 

 

 

 

 

 

 

 

 

 

 

 

 

거리로 나선다. 굿 모닝 사이공!

 

 

 

 

 

 

 

 

 

 

 

 

 

9시 10분 벤탄 시장

 

 

 

호치민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늘은 그냥 지나치며 구경하지만,

호치민을 떠나기 전날엔 이곳에서 쇼핑을 했는데, 같은 물건의 가격이 제멋대로다.

 

 

 

 

 

 

 

 

 

 

 

 

 

 

 

 

 

 

 

 

 

 

 

 

 

 

 

 

 

 

 

 

 

 

 

 

 

 

 

 

 

 

 

 

 

 

 

 

 

 

 

 

 

 

 

 

 

 

 

 

 

 

 

 

 

 

 

 

 

 

 

 

 

 

 

 

 

 

 

 

 

 

 

 

 

 

 

 

 

 

 

9시 30분 통일궁

 

 

 

호치민에서 가장 큰 불거리이자 베트남의 근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1868년에 건축되어 1954년까지 프랑스 총독의 관저로 사용된 곳으로 노로돔 궁전이라 불렀다.

프랑스가 물러간 후, 베트남은 남북으로 나뉘게 되고,

이곳을 남부 대통령이 사용하면서 대통령궁으로 불리게 된다.

1962년 군부 구테타 때 궁 절반 이상이 일시적으로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1975년 4월 30일, 북부 베트남군이 진입하면서 그 이름도 통일궁으로 바뀌게 된다.

현재는 주인 없는 곳이며 단지 관광용으로만 개방하고 있다.

 

 

 

 

 

 

 

 

 

 

 

 

 

 

 

 

 

 

 

 

 

 

 

 

 

 

 

 

 

 

 

그날 통일문 정문을 밀고 들어왔던 바로 그 탱크다(중국제).

정문 오른쪽에 두 대의 탱크가 전시되어 있는데,

안내판에는 당시 탑승했던 네 명의 군인 이름도 명기되어 있다.

 

 

 

 

 

 

 

 

 

 

 

 

 

 

 

대통령이 각료들과 회의하고,

각국의 대사들과 환담하던 방들이 연이어 있다.

 

 

 

 

 

 

 

 

 

 

 

 

 

 

 

 

 

 

 

 

 

 

 

 

 

 

 

 

 

 

 

 

 

 

 

 

 

 

 

 

 

 

 

 

 

 

 

 

 

 

 

 

 

 

 

 

 

 

 

 

 

 

 

 

 

 

 

 

 

 

 

 

 

 

 

 

 

 

 

 

옥상 헬기장에 있는 헬리콥터.

남부 대통령이 상시 대기시켰던 헬기와 같은 기종이다.

헬기장에는 두 개의 붉은 동그라미가 있는데(왼쪽 하단에 보이는 것),

1975년 4월 8일,

당시 남부 베트남 공군 장교였던  Nguyen Thanh Trung이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F5기를 몰고 와 폭탄을 투하했던 장소다.

 

 

 

옥상 위의 헬기.......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래 전 아내와 함께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을 보았다.

하루 종일 걷느라 피곤도 했지만, 노래를 영어로 들으려니 죽을맛이었다.

결국 둘다 모두 끄덕끄덕 졸다깨다를 반복하며 보는데,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장면이 둘 있었다.

 

 

 

하나는 농민들이 죽창으로 무대 바닥을 두드리며 시위하는 장면이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배우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심장 박동 리듬 쯤에 맞추어 죽창을 일제히 두드리던 그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다른 하나는 헬기와 관련이 있다.

사이공이 함락될 때 주인공 미군 병사와 그의 연인 미스 사이공은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사이공을 떠나는 마지막 헬기를 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이별이었다.

바로 그 헬기,

무대 위 천장에서 진짜 헬리콥터가 프로펠러를 윙윙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정문 앞은 레주언 거리다.

베트남 통일 후 1대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여기는 지하 벙커.

베트남 전쟁 당시 지하실은 미군의 작전 지휘 본부로 사용되었다.

 

 

 

 

 

 

 

 

 

 

 

 

 

 

 

 

 

 

 

 

 

 

 

 

 

 

 

 

 

 

 

 

 

 

 

 

 

 

 

 

 

 

 

 

 

 

 

 

 

 

 

 

 

 

 

 

 

 

 

 

 

 

 

10시 50분 전쟁 박물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정보부가 사용했던 건물에 전쟁 기념관을 만들었다.

비극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

통일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1862년부터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격히 약화되고 그 자리를 일본이 대신하지만,

 1945년 8월 호치민의 혁명 세력은

일본의 패망을 틈타 친일 정권이었던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를 밀어내고,

9월 2일 베트남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호치민의 사상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미국과

베트남 재지배를 원하는 프랑스의 욕구가 맞물리면서

일본군 무장 해제를 빌미로 연합군이 주둔하고, 프랑스의 군대가 다시 들어온다.

결국 프랑스와 호치민 세력간의 소위 인도차이나 전쟁이 8년간 벌어지다가

북서부의 산악지대인 디엔비엔푸 전투를 계기로 호치민 세력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다.

 

 

 

그 전투가 끝난 1954년 7월에 진행된 제네바 협정은

투표에 의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라고 명시한다.

그러나 호치민 세력의 승리가 예견되자 미국은,

남부 베트남에 친미 괴뢰 정권을 전격적으로 수립하니,

베트남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의 통킹만을 순시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가

북베트남군의 어뢰정한테 공격을 받고,

이틀 후에는 다른 군함이 또 공격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미의회는 8월 7일 '통킹 만 결의'를 하고,

이 결의에 따라 이듬해 2월 미 공군이 북베트남을 공습하면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베트남 전쟁은 시작된다.

그리고 1975년 4월 30일 북부 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기까지

한국군 5천 명을 포함한 1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한국군 1만 명을 포함한 210만 명이 부상을 입는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즈는 그들이 입수한 미 국방성 문서를 분석한 결과,

미국의 전쟁 개입을 결정적으로 가져온 위 통킹만사건은 조작된 것이라 보도하고,

이 기사는  훗날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을 비판할 때 인용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 기사가 잘못 되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서 어느 곳에도 '조작했다'는 없고, 단지 그 방대한 자료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반론이다.

 

 

 

통킹만사건이 진실일 수도 있고 조작일 수도 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싸움을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 구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개입의 이유야 어떻든 베트남 전쟁은 그 자체가 숱한 비판을 받는다.

하이라이트는 당시 미국의 전쟁 담당자였던 로버트 맥나라마 국방장관이다.

 

 

 

맥나라마는 원래 천재 경제학자의 반열에 있던 사람으로

세계은행 총재와 포드 자동차 사장까지 역임한 사람이다.

그는 전쟁을 경영하듯이 준비했고, 각종 지표를 보여주며 곧 승리할 것처럼 떠들었는데,

그의 통계엔 무기와 전쟁 물자만 있었지, '민심''인간'이란 요소는 없었다.

베트남 인민들의 호치민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

그리고 부정 부패로 얼룩진 친미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그는 간과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런 사실들을 모두 인정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왜 이렇게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설명해야 할 빚을 안고 있다.

_ 맥나라마 자서전에서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던 월남전 반대 데모

 

 

 

 

 

 

 

 

 

 

 

 

 

 

 

 

 

 

 

 

 

 

 

 

 

 

 

 

 

 

 

 

 

 

 

 

 

 

 

 

 

 

 

 

 

 

 

월남전을 지휘했던 미국의 지도자들

 

 

 

 

 

 

 

 

 

 

 

 

 

 

 

 

 

 

 

 

 

 

 

 

 

 

 

 

 

 

 

유엔 본부 앞에서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며 분신 자살한 Lapore(22)

 

 

 

 

 

 

 

 

 

 

 

 

 

 

 

미 국방성 건물 앞에서 분신 자살한 Morrison

 

 

 

 

 

 

 

 

 

 

 

 

 

 

 

군 징집 영장을 소각하고 있는 미국 청년들

 

 

 

 

 

 

 

 

 

 

 

 

 

 

 

 

 

 

 

 

 

 

 

 

 

 

 

 

 

 

 

 

 

 

 

 

 

 

 

 

 

 

 

 

 

 

 

 

 

 

 

 

 

 

 

 

 

 

 

 

 

 

 

 

 

 

 

 

 

 

 

 

 

 

 

 

 

 

 

 

 

 

 

 

 

 

 

 

 

 

 

 

 

 

 

 

 

 

 

 

 

 

 

 

 

 

 

 

 

 

 

 

 

 

비슷한 시기, 두 명의 Kerrey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Bob Kerrey.

그는 미해군특수부대 장교로 근무하면서 혁혁한 공,

특히 Than Phong 전투에서 21명의 비엣콩을 무찌른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받고,

제대 후에는 네브래스카 주 출신의 상원 의원을 지내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된 전쟁 영웅이다.

그러나 2001년 뉴욕 타임즈가 그 전투의 실체를 파헤치자

그는 양심 선언을 하게 되고 그의 정치 생명도 그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_ 그들이 죽인 마을 주민들은 모두 비엣콩과 관련이 없고,

66세의 노인 그리고 아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세 명의 어린이는 우물 안에 숨어 있다가 학살당했다_

위 사진 가운데 인물이 Bob Kerrey다.

 

 

 

다른 사람은 John Kerrey다.

 예일대 출신으로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장교로 월남전에 참전,

나트랑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공로를 세워 무려 다섯 개의 훈장을 받는다.

그러나 1969년 전역한 그는 1971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이 쓰레기 같은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후 그는 반전운동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고,

 메세추세츠 주 출신의 미 상원 의원이 된다.

현재 오바마 정권 하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케리가 바로 이 사람으로,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해 떡볶이 먹는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기도 했다.

 

 

 

 

 

 

 

 

 

 

 

 

 

 

 

 

 

 

 

 

 

 

 

 

 

 

 

 

 

 

 

전쟁은 그 어떤 명분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자체가 죄악이다.

살인을 전제로 치루어지는 전쟁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지구상에 없다.

 

 

 

 

 

 

 

 

 

 

 

 

 

 

 

 

 

 

 

 

 

 

 

 

 

 

 

 

 

 

 

 

 

 

 

 

 

 

 

 

 

 

 

 

 

 

 

 

 

전쟁 박물관을 통해 베트남은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많은 수의 미국 관광객들이 돈을 지불하고 이 박물관에 들어와,

자기 선조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