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9.27(금)
개인약수 주차장(2:45)_ 개인약수(3:45)_ 능선삼거리(5:25)_ 대골재(6:00)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가을은 북쪽에서 시작한다.
완연한 가을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방태산 깃대봉으로 비박산행을 나선다.
워낙 교통편이 좋지 않아 오랫만에 승용차를 몰고 간다.
방태산 하면 인제가 떠오른다.
내비 여사에게 문의하지 않고 춘천을 지나 그냥 인제로 내달린다.
인제 가까이 가서야 문의하니 한참 돌아가야 한단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거늘, 지방길 어두우면서도 무심코 내달린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원래 계획은 이러했다.
한니동에서 용늪골을 통해 깃대봉에 오른 다음, 내일 개인약수 방향으로 내려오기.
그러나 돌아오는 바람에 산행 출발 시각이 많이 늦어져 머리가 복잡해진다.
결국 오르는 코스와 내려오는 코스를 바꾸기로 한다.
개인약수까지는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산책길이 이어진다.
약수터에서 능선까지는 가파른 길의 연속이고,
능선에 올라서면 좌측 깃대봉 우측 주억봉의 삼거리가 나온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깃대봉과 배달은석 사이에 있는 대골재에 텐트를 세운다.
개인약수 주차장 근처엔 민박집이 두 개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풍차 민박과 미산너와집이다.
불운의 개인약수산장.
원래는 이 집까지 포함해 세 집이 되어야 하는데 2년 전 겨울 화재로 전소되었고
나이 많은 모친과 병든 아들이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아주 오래 전, 병약한 아들을 이끌고 모친이 이곳에 거주할 곳을 마련했다.
지금보다 교통이 훨씬 좋지 못했던 그 시절,
개인약수를 찾은 사람들이 하나둘 이 집에 머물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민박집으로 변한다.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그 집이 원래 불법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재건하지 못하고
관청의 묵인하에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비해 다른 두 민박집은 사유지에 건설된 합법적인 건축물들이다.
개인약수산장 백구.
화재가 나던 날 크게 울부짖어 두 모자가 목숨을 건졌다 한다.
5년 전 고교동기들과 함께 이곳에 왔었는데,
그때보다 길이 넓어지고 훨씬 좋아져 걷기 편하다.
그러나 다소 거칠었던 그때가 더 좋다.
산장터에서 약 한 시간 내의 거리에 있는 개인약수다.
내가 개인약수산장을 처음 찾았던 때는 25년 전쯤이다.
동해안으로 가족 피서 여행을 갔다가 동네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이 산장을 소개하며 하루 묵어 가자고 했다.
아침에 어떤 친구가 어이 추워 하며 보따리를 들고 들어와 부산을 떠는 바람에 눈을 떴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곳 근처의 개인산에서 자다가 들어 오는 길이라 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게다가 그 산장에 머물며 이 산 저 산에 들어가 자는 것이 취미라니.......
사실 그때 나는 그 산장에서 하룻밤 잤지만, 1시간 이내에 있었던 이 약수터에 와 보지도 않았다.
_ 이런 미친놈이 있나?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미친 짓을 내가 하고 있다.
이곳 약수엔 철분이 많아 약수터 돌들이 주황색을 띠고 있다.
당시 산장엔 전국에서 모인 많은 환자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었다.
지금은 교통이 편하지만 당시는 무척 어렵게 들어와 나가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민박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장기 투숙객들이었다.
그들이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며 쌓아올린 작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마 간절한 마음으로 쌓았을 것이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세상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들이 돌탑을 쌓을 땐 적어도 이승이 행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 이승에 있는지 저승에 있는지는 그 누구도 명학히 대답할 수 없다.
약수터를 중심으로 두 개의 길이 있다.
오른쪽은 주억봉에 가까운, 왼쪽은 깃대봉에 가까운 능선에 도달한다.
상당히 가파른 길이기에 헉헉대며 오른다.
돌들에 이끼가 많이 끼어 있는 음습한 비탙길이다.
능선에 오르니 단풍이 보인다. 가물어 메마른 단풍잎.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
계곡과 길은 아름답지만 조망이 터지질 않아 답답했는데, 이제야 시야가 넓어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사랑과 존경을
풀잎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드러눕는다.
그러나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잎.
아래 안부가 대골재. 1차 비박 예정지다.
저곳을 지나 올라선 다음 왼쪽으로 꺾어지면 깃대봉이다.
배달은석 또는 배달은산.
아주 오래 전 그 옛날,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그때 노아의 방주가 매달렸던 바위산.
그래서 배.달은.석(산).
악명 높은 대골재의 바람을 피해 다른 곳에 텐트를 칠까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미 해가 상당히 기울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서둘러 텐트를 치기로 한다.
_그래, 겨울바람 미리 연습해 보는 거야!
질라이트의 컨스텔 라이트다.
나홀로 비박산행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장비 정보에 어둡다는 것이다.
물론 여럿이 모이다 보면 과하게 장비 자랑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론 필요한 정보를 얻게도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한 것은 블랙 다이아몬드의 올빗 랜턴인데,
최근에서야 이 랜턴을 알게 되었다. 무척 늦은 정보.......
내것보다 더 밝고 더 가볍고 더 작아 안 사고 배길 수가 없었다.
오늘도 알파미
어쭙잖은 꾀을 냈다.
육포를 구워 반찬 겸 안주로 먹는 것.
그러나 역시 반찬으로는 불합격!
나홀로 비박산행을 하다 보니 시간 보내기 위해 별것 가지고 실험을 한다.
그래도 마냥 즐겁다.
바람이 몹시 불어 텐트를 세울 때 고생을 한다.
고정을 하기 전까진 폴대가 부러질 기세로 휘어지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오는 방향에 발을 놓고 자기로 한다. 뜨거운 물과 함께.
그러고 보니 오늘 수통 커버를 갖고 온 것이 다행이다.
펄럭이는 텐트와 함께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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