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8(토)
어젯밤의 일이다.
텐트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기분 좋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깼다.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람에 약한 구조인 내 카본 리플렉스2 텐트가 바람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폴대가 이리저리 흔들렸고, 플라이가 춤을 추었다.
바람소리는 무슨 동물 울음소리처럼 들렸고, 빗줄기는 적진에 투하한 수류탄 파편 같았다.
지난 겨울 함백산에서의 지긋지긋했던 악천후가 떠올랐다.
만일 텐트가 날아가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 다시 어느새 눈을 붙였다.
이른 아침 눈을 떠 세상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액땜은 어제 비와 바람으로 끝냈다.
일기예보대로 오늘 아침에 비가 왔다면 더욱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을 테니까.
어쨌든 이 카본 리플렉스2 텐트의 방수가 확실하다는 것이 증명된 밤이었다.
이너 텐트와 겹치는 부분은 그 모진 비바람에도 100% 방수가 되었다.
주변을 산책했다. 어제 걸어온 길.
어젯밤 심란스러웠지만 내 텐트를 끝까지 지켜 준 나사못 펙.
혹시 뽑혀 나가는 것은 아닐까? 더 단단히 조이러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별별 걱정이 많았던 어젯밤.
텐트 네 귀퉁이와 전실 앞에는 당김줄을 했지만,
뒤와 양 옆은 그냥 두었었다. 그탓에 더욱 바람과 함께 춤을 추었을 것이다.
콩나물라면으로 아침 식사
9시 비박지 출발
다른 날보다 일찍 떠나야 했다. 아침을 먹는 즉시 철수 준비.
이곳은 산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 비박지를 떠나기 전 세 사람의 산행객을 만났다.
세 사람 모두 비박산행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행복하게 걷는다.
왼쪽이 전망대 있는 곳이고 오른쪽은 병풍바위
용봉산은 참 특이하다.
작은 산인데도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산행로 곳곳에 이런 평상과 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안식처를 제공하는 듯 싶다.
여기서 용봉사를 거쳐 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앞으로 더 진행해 전망대를 보고 병풍바위를 따라 내려갈 수도 있다.
잠시 망설이다 앞으로 직진.
앞에서부터 악귀봉 노적봉 정상.
비박지를 떠날 때 어제 그분의 말씀이 또 떠올랐다. 뱀이라 뱀.
비가 온 다음 뱀들은 가끔 몸을 말리기 위해 따스한 곳을 찾는다. 바위가 적격이다.
스틱 소리를 내며 걷는다.
왼쪽이 병풍바위, 저 암릉지대를 지나 하산할 예정.
9시 40분 전망대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붕괴 위험이란 표시와 함께 출입금지!
덕산 온천 지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전망대 바로 밑에 있는 바위
병풍바위, 저곳을 지나간다.
악귀봉, 어제 비박을 한 곳.
왼쪽에 용바위, 오른쪽에 전망대.
이 근처에서 아침 일찍 용봉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산을 한 바퀴 돈 분을 만났다.
나도 어제 계획을 잡을 때, 버스로 와 그곳에서부터 돌려고 했다.
그런데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해 승용차를 이용했고, 그 탓에 최영장군 활터 능선으로 올랐는데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그분 말에 따르면 용봉초등학교 능선은 볼 것이 없다고 한다.
내가 오르고 내려간 이 두 능선을 이용하는 것이 용봉산 산행 코스로는 갑이다.
용봉사
어제 올랐던 코스나 오늘 하산하는 이 코스나 모두 암릉능선
구룡대
매표소
10시 55분 주차장
주차장에 내려오니 관리실에 앉아 있던 아줌마와 산행 들머리를 알려주었던 관리원이 반색을 한다.
어젯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나 아닌지 걱정을 했다고 한다.
노 프라블럼. 즐거웠던 비박산행!
주변에 있던 버스 기사들(산악회)도 웅성인다.
아니 그런 날씨에 어떻게 저 산에서 잤나.......
상쾌한 이번 비박산행의 조력자는 어제 수련원 입구에서 만났던 그분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때 주차장 근처에서 한우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 식당에 들어가니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잡고 자기 부인을 부른다.
_ 어제 그 사람이 이 사람이야.
어제 오늘 몇 번씩이나 내 이야기를 하며 부부가 걱정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들린 행담도 휴게소, 뒤에 서해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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