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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시

해남 들에 노을 들어 노을 본다 // 장석남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에서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해남 들 가운데를 지나다가  

들판 끝에 노을이 들어  

어찌할 수 없이  

서서 노을 본다  

노을 속의 새 본다  

새는  

내게로 오던 새도 아닌데  

내게로 왔고  

노을은  

나를 떠메러 온 노을도 아닌데  

나를 떠메고 그리고도 한참을 더 저문다  

우리가 지금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저 노을 탓이다  

이제는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중얼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저문다  

해남 들에 노을이 들어 문득  

여러 날 몫의 저녁을 한꺼번에 맞는다  

모두 모여서 가지런히  

잦아드는 저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슴 속까지 잡아당겨 보는 일이다  

어쩌다가 이곳까지 내밀어진 생의 파란 발목들을  

덮어 보는 일이다  

그렇게 한번 덮어 보는 것뿐이다  

내게 온 노을도 아닌데 

해남 들에 뜬 노을  

저 수천만 평의 무게로 내게로 와서  

내 뒤의 긴 그림자까지를 떠메고  

잠긴다  

(잠긴다는 것은 자고로 저런 것이다)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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