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안산 12선녀탕계곡 비박산행 2일
2013.10.11(금)
출발(9:00)_ 복숭아탕(11:30)_ 점심(12:20-1:00)_ 남교리 지킴터(2:35)
싸락싸락
마치 싸락눈 내리듯 안개비가 텐트 위에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다.
텐트 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 저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만일 날씨가 좋으면 일출을 보기 위해 정상에 다시 갔다 오려고 했는데.......
비 올 확률이 20%라는 예보를 보고 왔기 때문에 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대신 짙은 안개로 조망이 좋지 않아 답답한 산행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정작 산행이 시작되자 안개는 대부분 걷힌다.
십이선녀탕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 역시나 아름답다.
아마 대여섯 번 걸은 것 같은데 이번이 가장 아름답다.
계곡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
예전엔 당일 산행이라 내려가기 바빴는데 오늘은 그때와 달리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리고 비박산행을 다니면서 자연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작은 것에도 많은 감동을 받는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날것만을 보여 주는 자연을 대하며 오늘도 위로를 얻는다.
Leave No Trace
예전에도 하산을 할 때 가끔씩 무릎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오곤 했는데,
두타산 비박산행 때는 그것이 확연했다.
앞으로 종종 무릎보호대를 사용하려 한다.
주위에서 무릎을 다쳐 산행을 포기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섬뜩해진다.
설악산 다람쥐들은 사람을 무서워할 줄 모른다.
계곡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옆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알짱거린다.
입에 뭔가를 물고 두리번거리다 내 뒤의 바위 아래로 들어간다.
다시 나타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또 먹을 것을 물고 나타난다.
계곡의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걱정했던 안개는 사라졌지만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잠시 아쉬워 하지만 선선한 가운데 걷는 것을 행복해 한다.
미약한 물줄기들이 만나고 만나 점점 더 큰 세상을 이룬다.
십이선녀탕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복숭아탕.
몇 년 전 설악산에 대홍수가 났고, 그 결과 산행로가 많이 망가졌다.
그것을 계기로 산책로를 정비하면서, 몇몇 곳에 전망대를 설치했는데
복숭아탕 전망대는 그것을 잘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오늘 보니 남교리에서 이곳 복숭아탕까지만 관광을 온 사람들이 꽤나 많다.
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할 일의 목록이 하나 더 생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아름다움에 도취해 걷다 보면 계곡의 끝이다.
아마 이 곳을 지날 때쯤일 것이다.
박배낭을 메고 올라오는 세 사람과 마주친다.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_ 다시 올라 가?
친구와 마주 보며 웃는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며 발을 씻은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2013년 10월 11일, 설악산 십이선녀탕에 발을 담근다.
십이선녀탕계곡 입구부터 계속 함께 걸어 온 물물물.
마지막 순간에도
그 청아한 물소리와 녹색 물빛으로 찾아온 산행객을 환송한다.
금강산은 수려하되 장엄하지 않고, 지리산은 장엄하되 수려하지 못하나
설악산은 장엄하고 수려하다.
고려 시절 문신, 안축의 말이다.
지킴터에서 다리를 건너 서낭골 칼국수 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다음 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원통터미널 가는 버스 시간표: 12.30, 14.20, 16.00, 17.10, 18.10, 19.45, 20.20)
콜! 1만 5천원에 원통터미널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