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재_ 덕두원 비박산행 2일
2013.8.16(금)
오전 7시 잠에서 깨다
새벽에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깬다.
옷을 모두 벗은 채 침낭으로 배만 덮고 잤다.
남은 물 400
비상용으로 100정도를 남기고 300을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궁리.
커피 한 잔과 스프 하나로 낙찰.
이번에 처음 배낭에 넣고 간 보노의 포르치니버섯스프다.
뜨거운 물 150ml를 넣고 15초 동안 저어 준 후, 1분 기다렸다 먹으면 된다. 무게는 17g.
앞으로 비상용으로 넣고 다닐 생각이다.
밖으로 나와 보니 안개가 짙다.
오늘도 무척 무덥겠다는 예상을 해 본다.
9시 출발
왼쪽으로 가면 북배산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계관산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면 덕두원으로 넘어간다. 그곳으로 간다.
어제 밤새도록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그곳으로.
싸리재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임도와 만난다.
반은 물길을 따라 길이 있고 반은 풀숲을 헤치며 나가야 한다.
왼쪽에 리본이 걸려 있다. 싸리재와 연결되는 길.
저 표지가 없다면 이곳에서 싸리재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금년 겨울엔 이곳을 거쳐 계관산이나 북배산에 오르고 싶다.
오른쪽 좁은 길은 덕두원 명월리로 내려가는 산길이다.
그 길에서 산림청 직원들이 이날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일 하산할 지점인 덕두원 명월리
자작나무숲
이곳은 국유림으로 산림품종관리센터인 채종원이 관리하는 지역이다.
잘 가꾸어진 숲지대를 이루고 있다.
7,8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길을 걸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동기들과 명월리에서 하룻밤 보내고 석파령을 넘어 당림리로 갔다.
지도 한 장도 없었고, 물 한 모금도 없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라니도 만나고 뱀도 만나고 산토끼도 만나면서 뙤약볕을 걸었던 길이다.
당시 이 지역에서 나는 쾌쾌한 썩은내를 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산림과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으니 동물 시체 썩은내란다.
그래서 이 숲은 살아 있는 숲이란다.
오늘도 그 냄새를 맡으며 걷는다.
나 역시 살아 있는 숲의 살아 있는 짐승일뿐이다.
전나무숲
소나무숲
다시 자작나무숲
물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배낭엔 정수기가 있어 든든하다.
이런 곳에 사유지가 있다는 것은 미스테리
덕두원천 상류 계곡.
이 물이 작은 지류들과 합쳐져 어마어마한 내를 형성한다.
10시 30분 잣나무숲 도착
아무도 없다. 오늘은 금요일, 아무도 없을 것이다.
텐트를 치기 전 계곡으로 나가 배부터 채운다.
1년만에 사용하는 정수기
지난 비박산행 때 티타늄 코펠 밑바닥을 태운 적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깡통 뚜껑을 준비해 왔는데,
에버뉴의 세라믹 코팅 코펠이라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조심조심 불질을 했다.
만일 성공한다면 깡통 뚜껑같은 불편한 물건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터.
그러나 결국 오늘도 검은 상처를 낸다.
티타늄 코펠 밥짓기 과외를 받아야 할 입장이다. 아니면 알파미나 누룽지로 때우든지.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치러 갔는데......
뭔가 옆에서 커다란 지렁이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아기뱀이다. 금년 들어 처음 보는 뱀이다.
녀석 꼼짝 않고 있는다.
순간 어느 것으로 실험을 해 볼까 머리를 굴린다. 스틱? 모기약?
스틱 한 방 쿵 찍으니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놓는게 마냥 귀엽다.
그런데 이 녀석 물가로 사라져, 다음부터 물가로 갈 때면 계속 스틱을 쿵쿵 찍으며 걷게 되었다.
물가로 나와 물장난을 하며 논다.
누군가 선물해 준 이상한 차도 먹어 보았는데 자극이 없어서 그런지 별맛이 없다.
난 그냥 커피가 좋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등에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짐을 서둘러 텐트 안에 모셔 두고 나는 냇가로 나와 비와 맞선다.
온몸을 냇물에 담그기도 하고 비로 샤워를 하기도 하고.......
비는 한 시간만에 멈추었다.
홀로 있는 숲속 냇가에선 못할 일이 없다.
물놀이는 언제나 피곤하다.
이른 시각에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이 비박지의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_ 물맛이 없다.
그래서 밥맛도 떨어지고 표고버섯숙회맛도 떨어지고 커피맛도 떨어진다.
정수기로 걸러낸 물은 그나마 낫다.
물기 한 방울도 머금지 않고 모두 튕겨내는 엠에스알의 아우터 텐트.
한낮에 한바탕한 빗방울이 아직도 뒹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