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스페인

스페인 여행 5일(5) 코르도바의 유대인 지구 Juderia후데리아

난다데비 2013. 6. 25. 09:00

 

 

 

201`3.4.27(토)

 

 

 

 

 

 

 

 

 

 

 

 

 

 

 

 

 

 

 

 

 

 

 

 

 

 

 

 

 

 

 

메스키타에서 나오니 들어갈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섞여 북적이는데,

집시풍의 현지인들이 특히 눈에 띄였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았다.

아침 식사 시간에 서빙을 했던 여인이 짐을 건네준다. 안주인인 모양이다.

완연히 유대인 두상을 갖고 있는 여인이다.

 

 

 

 

 

 

 

 

 

 

 

후데리아라서 그런가?

유대인의 뒤태를 풍기며 걷는 사람을 본다.

 

 

 

 

 

 

 

 

 

 

 

 

 

 

 

 

 

 

 

 

 

 

이때가 1시 30분 경이다.

세비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기 전까지 세 시간의 여유가 있다.

우리는 유대인 집단 거주지였던 후데리아를 조금 더 걸어보다 간식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8세기 경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이슬람 세력은 유대인들에 대해 포용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여러 나라로부터 우수한 유대인들이 몰려들었고,

그들로 인해 시 철학 과학 등 많은 분야에 걸쳐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사벨라 여왕이 스페인 전 국토에 걸쳐 국토 회복을 이룩하면서

유대인들은 찬서리를 맞게 된다.

혹독한 시련 속에 그들은 스페인을 빠져나가게 되는데,

이는 결국 스페인이 옛 영화를 잃고 마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세리인 동시에 국가의 주요한 납세자들이었고

정신적인 분야에 남다른 기여를 하고 있었다.

 

 

반면 이곳을 빠져나간 유대인들은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서인도제도 등과 무역을 해 다른 의미의 해상왕국을 건설한다.

 

 

 

 

 

 

 

 

 

 

 

 

 

 

 

 

 

 

 

 

 

 

 

 

 

 

 

 

 

 

 

 

 

후데리아, 유대인들의 삶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그들은 공포에 떨고 슬픔에 눈물을 떨구었겠지만

먼 훗날 이 골목을 걷는 여행객은

회반죽이 입혀져 하얀 집 사이사이로 흩날리는 꽃향기를 맡는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답고

어쩌면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이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집들에 비해 타파스가 다양하고 가격이 쌌다.

이 친구 아주아주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양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이런 집에 들어와 앉는 동양인은 흔치 않다.

서빙하던 녀석이 신기한 듯 자꾸만 얼굴을 돌려 눈을 마주쳤던 식당.

 

 

 

 

 

 

 

 

 

 

 

아구아는 생수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