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_ 연화도_ 미륵산 비박산행 2일
2012.5.6(일)
비박지 출발(9:45)_ 연화사(11:40)_ 연화도 선착장 출항(1:25)_ 통영 도착(2:30)_ (점심)_ 미륵산 케이
블카 탑승(5:00)_ 미륵산 정상(5:40)_ 비박지 도착(6:15)
어제 일찍 잔 덕분에 그제 서울서 내려오며 피곤했던 것을 한꺼번에 날려 보냈다.
바로 옆에선 양식장을 오가는 배와 낚시꾼들을 태운 배로 분주했다.
일회용 북어국과 진짜 북어를 넣어 함께 끓인 아침 식사
용머리 해안 끝 부분의 출렁다리.
동두마을에서 이 출렁다리를 건너갔다가 되돌아 와 걷게 된다.
정말 한경치하는 곳이다.
만일 연화봉 정상에서 비박산행을 끝냈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곳까지 온 곳이 행운이었다.
동두마을 해변가, 어제 잠들었던 곳
연화봉 정상과 해벽 위에 있는 보덕암
바로 이 지점이다.
재작년인가 왔을 때 연화사에서 이 지점까지만 왔다가 되돌아 갔다.
그러나 실제 절경을 보려면 이 지점을 지나 용머리까지 갔어야 했다.
연화사
불심이 깊은 아이포토님은 사찰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도 만나고 절도 하고.......
불심이 없는 나는 빈둥거리다 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그늘은 공기가 차갑다.
연화도를 떠나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길, 마종기
통영 연안 부두
현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분소식당, 여객선 터미널 바로 앞에 있다.
도다리 쑥국, 봄내음이 진하다.
우리가 들린 바로 다음날까지만 하고 글피부터는 여름 음식을 한다고 했다.
식사를 한 후 잠시 빈둥거리다 택시를 이용해 케이블 카 탑승장으로!
미륵산 정상을 오가는 케이블 카.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는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케이블 카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전망대.
전망대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여러 곳에 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옛날 이순신 장군이 누볐을 섬과 섬 사이의 바닷길도 보인다.
통영시를 바라보며 옛 친구를 생각한다.
이곳 출신인 대학 동기가 하나 있었다.
중학생 시절, 방학 때 내려와 엎드려 타임지 원서를 보던 형이 부러웠다.
형이 서울로 올라간 후, 형이 남기고 간 타임지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 찾아가며 읽었다.
문장의 구조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뜻을 유추하며 읽었다. 그리고 영어에 빠졌다.
점점 학교 수업 시간을 빼먹는 일이 잦아졌다.
학교 뒷동산에 올라 타임지를 탐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국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군 생활 시절엔 돼지 사육장에서 하루 종일 근무.
매일 영자 신문의 사설을 통째로 암기했다.
그리고 제대.
1년 후배였던 이 친구는 군 제대 후 1년 늦게 복학한 나와 3학년 때 동기가 되었다.
이 친구의 언어 구조는 온통 영어였다.
리포트를 낼 때 영어로 써서 내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씩 영작시를 써서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물론 우리들의 전공은 영어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사회로 나왔지만, 이 친구는 국제정치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졸업 후, 규격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을 하던 그는
몇 년간 번역물을 내가 구해 주어 그 일에 종사하다가
부산으로 내려가 영어 강사를 했다.
그 시절엔 한두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 얼굴을 맞대곤 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하니 불통이다.
그후 이 친구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
통영을, 그 시절 충무였던 이곳을 바라보며 그 친구를 생각한다.
어쩌면 전설로 남을 그 친구.
그 친구가 올라 타임지를 읽었던 뒷동산은 어드메쯤일까?
신혼 초 아내와 함께 통영의 그 친구 집을 찾아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 적도 있다.
나의 부실한 기억력이 통탄스럽다.
기억이 난다면 지금이라도 찾아 볼 텐데.
봉수대
미륵산 정상.
이미 여섯 시가 다 되었는데도, 정상에서 사진 찍기 위해 선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상 근처 데크에서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내일 아침에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조금 더 진행하다 적당한 곳을 물색하기로 했다.
우리가 하산 지점으로 잡은 용화사 광장까지 1km밖에 안 남은 지점이다.
데크가 있고, 평평한 곳이 있다. 여기서 비박배낭을 풀기로 했다.
텐트를 치다가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블랙다이아몬드 하이라이트의 경우, 네 귀퉁이가 약하다.
그 한 곳을 뽈대가 찔러 구멍이 나고 말았다.
서호시장에서 사온 참소라가 첫 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서해에서 먹던 소라보다 맛이 없다.
신 김치와 고등어 통조림으로 만든 고등어찌개.
통조림의 국물도 함께 넣었더니 안 넣었을 때보다 맛이 별로다.
처음 올라 온 미륵산에서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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