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비박산행 1일
2012.1.28(토)
동서울터미널 출발(8:00)_ 단양, 점심(10:15)_ 단양 출발(11:00)_ 어의곡 주차장(11:40)_ 비로봉식당
(11:50)_ 늦은맥이재2.5(1:15)_ 늦은맥이재(3:30)_ 비박지(5:00)
소백산에 비박산행을 다녀왔다. 산에 푹 빠진 후, 처음으로 소백산을 찾았을 때 느꼈던 그 감회를 지
금도 잊을 수 없다. 짙은 안개 속에 끝없이 펼쳐진 산줄기, 백설을 뒤집어 쓴 주목들이야 그렇다쳐도
몸을 가눌 수 없게 불어대던 바람도 좋았다. 그 후 겨울이 오면 소백산병이 도졌고,여러 번 산행을 했
지만 비박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비박산행은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광풍같은 소백산 날씨 탓
에 기상청 일기예보를 시시각각 점검했는데, 무리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배낭을 꾸렸다. 동행
자는 지난 광덕산 비박산행을 함께 했던 자유새님. 요즈음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백산은 산 이름 앞에 작을 '소'가 붙여졌지만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도솔봉, 제1 연화봉, 제2 연화
봉, 국망봉 그리고 정상인 비로봉이 연봉을 이루면서 고봉 준령이 넘실대고 있는 거대한 산이다. 이름
은 태백산에 뒤지지만 산세는 훨씬 크다.
터미널 앞 식당에서 올갱이 해장국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충주 처가에 갔을 때 장모님이 끓여주신 올갱이 해장국을 먹은 이후로
이 해장국을 즐겨 먹는 편이다.
그러나 이 식당의 올갱이는 냉동인지 올갱이가 플라스틱 같고 국에서도 진한 맛이 나질 않는다.
어의곡으로 향하는 버스 정거장은
터미널 맞은 편 시장 한복판을 지나야 나온다.
어의곡 버스 주차장에 내려 준비를 한 후, 산행로로 들어섰다.
이 식당 앞에서 길이 갈린다.
오른쪽은 보통 어의곡 산행로로 불리우는 길이고 우리가 걸은 길은 왼쪽길이다.
왼쪽으로 접어 들어 15분 정도 가면 산행로 표지판이 나온다.
대부분의 산행객이 오른쪽을 택해 정상인 비로봉으로 향한다.
우리는 왼쪽길을 택해 늦은맥이재, 국망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향할 것이다.
이른바 을전(새밭) 코스다.
내일 하산은 바로 오른쪽길, 어의곡 코스다. 도상 거리는 대략 16km 정도.
머리를 들어 봉우리를 보며 우리는 동시에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이르렀을 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바라본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지금까지 겨울 산행을 다니며 보통 '스노우' 모드를 활용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 당연히 노출 과다로 인해 눈의 질감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일일이 노출을 계산해 가며 찍었다.
번거롭기도 하고, 노출이 잘못되어 놓친 사진들도 있지만
콤팩트 카메라치곤 눈의 질감이 그런대로 살아난 사진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벌바위골이다. 벌바위는 확인을 못했고.......
늦은맥이로 오르려면 계곡을 몇 번 건너야 한다. 아마 장마철엔 위험한 코스인 모양이다.
계곡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코스 대부분이 음지였는데, 간혹 이렇게 양지인 곳도 나타난다.
출발점부터 이곳까진 평탄한 길이었지만 이곳부턴 다소 가파른 길이다.
주말을 맞이하여 수많은 산행객들이 소백산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코스에서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은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오르던 팀 하나는 목적지가 늦은맥이로,
그곳을 왕복한다 했다.
전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어느 생물인지 눈 위를 사뿐히 걸으며 예쁜 도형을 그려 놓았다.
먹이를 찾아 헤맨 것인가, 아니면 늦은맥이로 마실을 가셨나?
앙증맞다.
저 하늘과 맞닿는 곳이 늦은맥이재.
역시 높은 곳으로 오니 살아 있는 싱싱한 눈들이 눈에 들어온다.
늦은맥이재, 백두대간의 길목에 있다.
늦은맥이? 이름이 참 독특하다. 어원은 확인할 긿이 없고.......
이 코스엔 이처럼 머리를 숙이고 지나야 할 곳들이 예닐곱 군데 있다.
비박배낭을 맨 우리들은 거의 기다시피 해야 지날 수 있었다.
만일 눈이 녹는 계절에 오면 난감할 듯.
역시 능선에 올라서니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힘이 든다. 숨도 가쁘다. 해가 지기 전 텐트를 설치해야 한다.
자유새님이 비박지를 잡아놓고 마중을 나오셨다.
맨 왼쪽이 정상인 비로봉.
5월 이곳에 서면 선분홍 철쭉과 함께 저 능선을 바라볼 수 있겠지.
영주시 방향.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 거칠 것 없는 풍광이 펼쳐져 있다.
국망봉 방향이 서서히 물들고 있다.
힘이 남아 있다면 저 언덕에 올라 지는 해를 볼 일이다.
그러나 고단한 몸, 해가 지기 전 빨리 텐트를 세워야 한다.
언덕 너머의 붉은 해를 상상하며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비박지에 도착했다. 5월이면 철쭉이 만발할 곳이다.
30분 이후면 해가 넘어간다. 오른쪽 언덕 뒤로 붉은 기운이 뻗치고 있었다.
서둘러 집을 짓는다.
신기하게도 코끝 싸하게 밀려오는 강추위도 없고, 몸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바람도 없다.
산행을 시작하고부터 집을 짓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그러했다.
소백산에 바람도 안 불고 뺨을 찌르는 강추위도 없으니 비박산행을 하는 입장에서 편안하기는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섭섭하기도 하다.
어쨋든 해는 저물고 있었다.
아버지의 등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
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거나 낭
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들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
각했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
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 지고 내 뒤를 따
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아버지의 이름으로 쫓기고 쫓겨 까마득한 벼랑
으로 접어드는 내 뒤에 또 한 마리 산양이 보인다.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 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산양, 이건청
군 복무 시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돌이켜 보면 나와 아버지는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
만일 살아계셨다면 나와 함께 이렇게 들로 산으로 나와 잠자리를 펴고
지는 해를 바라보셨을지도 모른다.
철 모르던 시절,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이승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쉽다. 아니 슬프다.
오늘 저녁 노을이 아름다워 그 슬픔이 더 크다.
개인 텐트를 치고 나니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식당으로 가져 간 샹그릴라를 설치하려 했지만 몸이 고단하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그냥 두 동의 텐트 사이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겨울 텐트 밖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완전 준비한 자유새님과는 달리,
실내 생활만을 고려해 준비한 나는 오들오들 처량하게 떨며 저녁을 먹는다.
점점 기온이 내려간다.
마지막 순간 고기 한 점을 들고 텐트로 들어와 마지막 술잔을 비운 후 곯아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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