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2일
2012.1.10(화)
대피소 출발(6:40)_ 돼지령(7:57)_ 임걸령(8:27)_ 노루목(9:07)_ 삼도봉(9:39)_ 화개재(10:30)_ 토
끼봉(11:20)_ 연하천대피소(1:12-2:30)_ 벽소령대피소(4:40)
본격적으로 지리산종주를 하는 첫날이다. 원래 계획은 6시 출발이었으나 상당히 늦게 대피소를 나
왔다. 나는 늘 연하천대피소까지의 산행이 힘들다. 종주를 하는 워밍 업 코스이기도 하지만,별다른
특징이 없는 긴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배 고픈 길이기도 하다.
어제 저녁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하늘이 맑을 것 같다.
가는 도중 일출이나 운해를 볼 수 있다면 행운이다.
휘엉청 보름달이 벽소령에서의 밤을 기대하게 했다.
7시 40분, 돼지령에 이르기 17분 전, 일출을 만나다.
저 일출을 천왕봉에서도 볼 수 있다면.......
상고대와 황금빛 아침기운이 묘하게 어우러진 장관을 연출하다.
옛적 멧돼지들이 무리를 지어 서식했다는 돼지령과 돼지평전.
실제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원추리가 많이 있다.
이 산행에 끼어들 때, 혼자 반야봉에 다녀올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일단 일행 속에 끼고 보이니, 혼자 행동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쉬움 속에 반야봉 산행은 다음 기회로.
지형이 노루의 목을 닮아서, 또는 노루가 다니는 길목이라서 이 이름이 지어졌다는 말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세 갈래길을 옛날에 노루목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임걸령샘.
그 옛날 도적 임걸련과 그의 부하들이 먹었을 물을 선량한 우리도 먹는다.
임걸련은 조선 세조 때 지리산에서 암약하던 좀도둑으로
화개재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을 덥치던가, 아니면 지리산 곳곳의 사찰을 털었다고 한다.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리산에 이름을 남긴, 임걸련
그 후손들에겐 자랑거리인가 수치인가?
임걸련이 활동하던 언덕이란 뜻에서 임걸령이라 하였지만,
숲에 가려져 있어 고갯마루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만일 일출이나 운해가 없었더라면 정말 지루했을 길을
운좋게도 그들과 함께 걷는다.
전북남과 경남이 마주치는 곳, 삼도봉.
산행하는 내내 오전엔 운무가 지리산을 감싸고 있었다.
골짜기 곳곳에서 올라온 안개와 봉우리 위에서 내려앉는 구름이
지리산 구석구석을 쓰다듬었다.
세상사에 찌든 내 마음도 그 운무가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화개재.
그 옛날 남원의 산내장터와 하동의 화개장터를 연결해주던 언덕으로 넓직한 평원이다.
봇짐장수들이 서 있었을 그 자리에 우리 일행들이 서 있다.
기능성 등산화나 등산복이 없던 시절,
등짐을 지고 이 고갯마루까지 오르내렸던 그들의 삶은 등짐만큼이나 무거웠을 것이다.
날씨가 더운 날, 종주를 할 때면 이 곳 나무의자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며 산들바람을 맞는 것이
지리산 종주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토끼가 많이 살던 곳? 아니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면 이 봉우리는 정동(正東)인 묘방(卯方)에 위치한다.
그래서 한자 묘에서 따온 토끼봉이다.
높이는 1534m, 고봉준령이 넘치는 지리산이라 이제는 높이에도 무감각해졌다.
그냥 걸으니 1500을 훌쩍 넘는다.
더 이상 오를 곳은 없다
푸른 살들은 남김없이 제단에 바쳐졌다
내게 잠시 깃들던 것들은
모두 허공 중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움마저 단단하다
그러나, 나는 유년처럼 설렌다
내 속, 천 개의 태양이 지나간 길들을 되집어,
나는 내 속을 돌고 있다
머릿속 타들어가던 그 작열의 정점에서
나를 불러다오, 푸르러서 서럽던 것들아,
찬란하던 새벽의 불면들아
바람 속으로
적멸 속으로
햇살과 노을과 대지의 세례로써 새 이름 얻을 때까지
雪花 몇 송이로,
상형문자 몇 개로
지금 나는 버티는 중이다.
고사목, 최을원
연하천대피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운영했으나 지금은 보수 작업을 거쳐 국가에서 관리한다.
연하천은 구름 속에 내가 흐른다는 뜻.
이 지역은 고산지역인데도 습한 곳이 많다.
특히 여름이 되면 대피소 앞마당 근처는 항상 질퍽거린다.
비좁은 식당,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 밖에서 점심을 먹다.
배고픈 시각, 고기에 자꾸 젓가락이 간다.
앞 움푹진 곳에 벽소령대피소가 보이고,
에스자로 이어진 능선길 왼쪽 높은 봉우리가 정상인 천왕봉.
벽소령대피소
대피소 숙소 아래에 있는 식당, 매우 비좁다.
벽소령대피소는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식수를 구하러 백미터 지점이나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얼음길이라 포기하고 1리터 3000원이나 주고 샀다.
몸은 피곤하고, 시설들이 낙후돼 그 피곤함이 더하다.
벽소령은 이곳에서 보는 달이 하도 맑아 푸른 빛을 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벽소명월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서울을 출발할 때 벽소령에서 잔다 하여 벽소명월 찍으려 삼각대도 준비했다.
식당을 나와 숙소로 돌아갈 때 하늘을 보니 둥근달이 떠 있다.
그러나 추위와 피곤함이 모든 것을 귀찮게 한다.
꿩 대신 닭이련가, 숙소의 앞마당 등이나 카메라에 담았다.
벽소명월은 가슴에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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