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 비박산행 3일
2011.12.18(일)
대피소 출발(7:10)_ 삿갓봉갈림길(7:47)_ 월성치(9:00)_ 육십령갈림길(10:16)_ 남덕유산(10:50)_ 영
각통제소 2.6(11:54)_ 영각통제소(2:05)
금년 1월에 왔을 때는 대피소 1층에서 잤는데, 어젯밤은 2층에서 보냈다. 1층은 마루에도 불이 들어
오지만 2층은 그러하지 않다. 등이 서늘해 몇 번 잠에서 깼지만 고단한 몸이 수면제였다. 여섯 시가
되지 않은 시각인데도 출발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대피소의 아침은 분주하다.
동이 트기 직전 길을 나섰다.
몸이 무겁다.
어제 겨울 비박 배낭을 메고 10Km의 눈길을 걸었는데, 그게 한계인 듯 싶다.
다리 근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호흡이 따라 주지 않는다.
다시 한번 장기적인 흡연에 따른 후유증을 느끼며 내 자신을 질책한다.
금년 1월처럼 삿갓재는 생략한 채 걷는다.
언제나 삿갓재에 올라보나?
오늘은 어제와 달리 해가 전혀 나지 않은 채 안개만 자욱하다.
그 탓에 싱싱한 눈얼음을 구경하다.
마치 하얀색의 형광 물감을 스프레이로 뿌려 놓은 듯하다.
월성재, 한켠에 비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웠던 겨울 비박 배낭
어제는 망원경으로 보는 풍광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은 현미경으로 보는 세상이다.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100m 이전 지점, 마지막 힘을 내본다.
남덕유산 정상(1508).
남덕유산은 북덕유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향적봉에서 중봉 그리고 동엽령으로 완만하게 내려앉는 북덕유산은 말 그대로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산세다.
그러나 북덕유산은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어져 있어,
철계단을 이용하지 않고는 오르내릴 수가 없다.
북덕유산이 지리산과 같다면 남덕유산은 설악산과 같다.
조망이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북덕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지만
오늘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이런 풍광은 마음에 오래 남고......
또 이곳을 찾게 만든다.
눈으로 보았을 때 별로인 것을 사진으로 아름답게 치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아름다운 것은 결코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
북덕유산 정상과 영각사를 연결하는 산행로엔 암릉과 암릉이 서 있고,
폭이 좁은 철계단이 놓여 져 있다.
대부분의 산행객이 영각에서 남덕유로 오르기 때문에
하산하는 사람은 때로 대책 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남덕유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 얼굴마다 행복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제 곧 덕유의 풍족함에서 벗어나야 할 나는 아쉬움이 미련으로 남는다.
아래 세상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산 위 세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니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니들이.
그러나 서른 시간이 넘도록 순백의 세상에서 황홀함에 취해 있었던 나에게
너희는 허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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