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길/비박산행

함백산 비박산행 2일

난다데비 2011. 12. 15. 09:00

 

 

2011.12.10(토)

 

 

비박지 출발(10:40)_ 38번 국도(11:15)

 

 

 

엄청난 바람이었다. 텐트 내부의 폴대 한 편이 휘어져 내 배 위에까지 와 닿았다. 눈을 떠 보니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밖에서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 치고 텐트를 강타한다. 어제 텐트 펙을 하지 않고 그냥 잤더니

텐트가 펄렁인다. 아니 텐트 펙을 했더라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펙을 강력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곳이 아

니었기 때문에 바람으로 펙이 쉽게 빠졌을 것이다.  이 강력한 바람은 밤새 불어댔고, 아침에 되어서도 잦아

지지를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가 산중 깊은 곳에 갇혀 있는 신세가 아니라는 것. 조금만 내려

가면 국도다. 단지 이 사실만이 위안을 주었다.

 

 

우선 우리는 비박지를 잘못 선택했다.하필 우리가 머문 곳이 산에서 내려오는 산풍과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곡풍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두 바람이 우리들 지역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있으니 우리 텐트가 남아나질

못했다. 지난 2월 한라산에 올랐을 때 바람의 속도가 15였다. 어젯 밤 바람도 그 정도였다. 우리는 바람 앞에

미물이 되어 텐트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씩 눈을 붙였으나 깨어 있던 시간과 잔  시

간이 반반 정도였을 듯 싶다. 아이포토님은 한잠도 못 잤다고 한다. 텐트 설치할 때 샹그릴라를 중심으로  그

의 텐트가 왼쪽에 그리고 내 텐트가 오른쪽에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의  텐트가 내 텐트 오른

쪽으로 밀려와 있었다. 그의 집은 블랙다이아몬드의 하이라이트,  내 집은 인테그랄디자인의 MK1라이트, 두

텐트의 바람에 대한 저항력 차이에서 비롯된 듯 싶다.   아무튼 70kg이 넘는 사람을 텐트 안에 넣고 밀어붙인

바람의 힘은 대단했다.

 

 

어제 저녁 식당으로 사용했던 샹그릴라는  폭삭 주저앉은 상태에서 펙 하나에 매달려 뱀처럼 길게 누워 이리

저리 날리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염불을 읊는 소리가 들리니 더욱 처량했다.뜬눈으로 밤을 새운 아이포토님

의 목소리다.

 

 

 

 

 

 

 

 

 

 

엄청난 바람에 눈을 떠 밖을 내다 보니 휘엉청 보름달이 떴다.

흰머리 산등성이 위로 별들이 보인다. 무척 아름다운 밤이다.

이 밤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었다.

도저히 카메라를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찢어질 듯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 속에서 고생을 하며 간간히 눈을 붙였다 떴다를 반복했다.

일곱 시경 다시 눈을 떠 밖을 보니 이 장면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눈이 쌓여 있었는데 바람에 날려 가고 바닥이 드러났다.

하필 이런 곳에 텐트를 치다니......

제갈량을 따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사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제갈량의 지혜를 발휘할 수도 있었다.

다른 곳보다 이곳에 쌓인 눈이 적었다. 바람이 몰아친 증거였다.

 

 

 

 

 

 

 

 

고개를 돌려 금대봉 쪽을 보니 일출이 장관이다.

저런 모습을 보려고 함백산 비박을 계획했는데.......

텐트 밖으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내 몸무게로 텐트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사정없이 그 빈 공간을 바람이 밀고 들어왔다.

 

 

 

 

 

 

 

 

 

 

 

 

 

 

 

텐트 앞에 있는 숲지대, 이것이 산풍을 막아줄 줄 알았다.

그러나 도로를 따라 산풍이 내려오고, 도로를 따라 곡풍이 올라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목을 길게 뽑아 샹그릴라가 있던 곳을 보았다.

폭격을 맞은 듯 텐트는 주저 앉았고, 장비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눈들을 뒤집어 썼다.

나중에 철수할 때 보니 몇몇 장비가 사라졌다.

스패츠 한 쪽도, 샹그릴라 케이스도 바람에 실려 먼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텐트 환풍구를 타고 들어온 눈들이 텐트 안에 가득하다.

 

 

 

 

 

 

 

 

텐트 폴대를 잡아주고 있던 찍찍이들도 힘을 못 쓰고.......

 

 

 

 

 

 

 

 

모자도 동태가 되었다.

텐트 안에 있던 온도계를 보니 영하 9도다.

일기예보가 정확하다면 밖 온도는 영하 14도 , 풍속 15 정도이니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를 넘는다.

이럴 때 내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그냥 즐기기가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즐기자.

이 바람도 이 차거움도.

오늘 이 자리에서 추억을 만드는 사람은

우리들밖에 없다. 그래 그냥 이것을 즐기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바람 때문에 아침밥을 해 먹을 엄두가 안 난다.

어렵게 어렵게 텐트를 거두고 하산한다.

차도의 눈이 바람에 모두 날아가 마치 제설 차량이 다녀간 듯 하다.

 

 

 

 

 

 

 

 

그래도 눈 앞에 펼쳐지는 설경을 즐기지 않을 수가 없다.

배는 고파도, 추워도.......

마치 백두대간을 달리는 말갈기같은 저 겨울산의 모습을.

 

 

 

 

 

 

 

 

 

 

 

 

 

 

 

 

 

 

 

 

 

 

두문동재 터널, 고한쪽에서 태백쪽으로 넘어오는 38번 국도다.

 

 

 

 

 

 

 

 

 

 

 

 

 

 

 

 

 

 

 

 

 

 

 

 

 

 

 

 

 

 

 

내려온 길, 저 멀리 함백산 줄기가 보인다.

 

 

 

 

 

 

 

 

두문동재 터널을 빠져나와 첫 커브 길, 종종 교통사고로 뉴스에 나오는 곳이다.

우리가 하산할 때도 교통 사고가 나 혼잡했다.

교통경찰 차량도 와 있었다.

사고 처리를 끝낸 경찰 차량이 우리를 태백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

상쾌한 아침이다.

 

 

 

 

 

 

 

 

터미널 앞 식당, 그래 우리가 앉아 식사하는 곳이 해발 730미터다!

 

 

 

 

 

Seong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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