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비박산행 및 트레일 3일
2011.2.21(목)
비박지 출발(11:00)_ 항구 도착(11:50)_ 출항(12:00)_ 완도항 도착(1:00)_ (완도버스터미널)_ 장도, 청
해진 유적지(1:30-2:10)_ 완도 출발(3:10)_ 센트럴시티 도착(8:55)
여행을 끝내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텐트 안에서 빈둥거리다, 청송 해안가를 어슬렁거렸다.배
시간에 여유가 있다.
고교 시절 영어 참고서에서 버트랜드 러셀을 처음 만났다.정확한 문법에 명확한 논리 때문에 독해력 연
습 문장으로 많이 등장했다. 공부를 하며 점점 그분의 사상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대학에 들어간 후 그
분의 에세이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보았다. 그 책들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나중에 내 삶에 있어 중요
한 멘토 역할을 해 주었다.
당시엔 가볍게 웃으며 읽었는데 나이가 들며 점점 강하게 떠오르는 내용이 하나 있다.바로 게으름에 대
한 그의 찬양이다. 그는 인간 비극 가운데 하나를 부지런함에서 찾았다.그는 부지런함과 인간의 끊임없
는 욕망을 연결하여 생각했고, 오히려 게으름이 인간 본연의 삶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청산도는 분명히 걷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길은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고, 개성이 있다. 냉
정히 말해 청산도의 슬로길도 그런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길 이름만은 정말 아름답게 지었다.
슬로우 시티 그리고 슬로길.그러나 이 이름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만큼은 청산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걷는자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눈을 뜨고 텐트 문을 연 후, 처음 본 모습.
텐트 안에서 꼼지락거릴 때, 한무리의 관광객이 몰려와 텐트 바로 옆에서
여자, 에스 라인, 엉덩이, 기념 사진.......하며 떠들었다.
그들이 떠나간 후 나와 보았다.
어째 어제 저녁에 못 보았을까?
청송해변가에는 해송이 길게 일자를 그리며 늘어서 있다.
그리고 텐트를 칠 곳이 널려 있는데, 여름 한철에는 텐트 설치비를 받는 모양이다.
지난 밤 이곳에 텐트를 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비박지를 떠나며.
이번 여행도 트리코니와 함께 했다. 그런데 조금은 특별하다.
먼저 산 배낭이 팰리세이드이고, 팰리세이드의 경우, 멜빵을 아랫걸개에 걸었다.
그것이 편했고, 따라서 그레고리 배낭의 경우, 내 체형에 멜빵 아랫걸개가 맞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트리코니도 아무 생각없이 아랫걸개에 맞추어 다녔다.
그런데 자꾸 어깨가 아프다. 그래서 이번엔 윗걸개에 맞추어 나섰는데........무척 편하다.
같은 회사 제품이지만 용량에 따라 달리 조정해야 하는가 보다.
청송 해변을 떠난 후, 작은 동산을 돌아나오면 항구가 코 앞이다.
그러나 직접 내려가지 않고 동네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가는 것이 슬로길.
이른바 미로길.
꼭 슬로길 표지를 찾을 필요는 없다.
골목길에 들어선 후 대충 항구 방향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 방향으로 걷다가
길이 막히면 돌아나와 다른 길로 가면 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던가.
전선도 미로처럼 얽혀 있다.
청산도를 떠나며.
중앙에 1코스길이 보인다. 차도인 저 길이 아닌 아랫길 동네를 굽이 돌아 올라서면
바로 서편제 영화 장면에 나오는 돌담길이다.
항구 모습.
대부분의 조그만 섬들이 그러하듯, 청산도에서도 가장 번잡한 곳이 바로 항구다.
청송해변의 솔밭이 보이고
해변가는 온통 전복 양식장이다.
완도 타워
완도항 터미널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가 3시에 있다.
완도항에서 택시를 타고 완도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예약한 후, 다시 택시를 타고(7800원)
청해진 유적지가 있는 장도라는 조그만 섬에 가다.
대박이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이곳은 스케쥴에 없었다.
청산도에서 완도항으로 나오며 짜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했고,
그 해답을 완도항 앞에 있는 완도 관광지도판에서 찾아냈다.
장보고의 숨결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냥 걷는 즐거움도 크게 줄 수 있는 곳이다.
이 섬 안, 돌출된 곳 세 곳에 고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이것은 남쪽 고대로 동남아쪽 해안을 바라본다.
고대에서 바라본 풍경들
9세기 초반, 이 조그마한 완도에서 태어나, 서남해안을 주름잡았던 장보고.
해신(海神)이라 불리우는 대단한 사나이.그가 이룬 업적은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그의 후기 행적은
지방 토호 세력으로서 중앙 권력에 욕심을 내다가 화를 자초했는지,
아니면
중앙 권력이 그의 엄청난 세력을 불안하게 생각해 제거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가 활동한 중심 지역이 완도이고,
그 가운데서도 이곳 장도는 지휘소 비슷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른바 청해진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볼 수 있다.
현재 그 흔적들을 찾아내 상당 부분 복구된 상태다.
멀리 장보고 공원의 장보고 동상.
청해진 유적지는 성 안에서 돌아도 되지만 밑으로 돌면 예전에 설치했던 목책도 볼 수 있단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버스 시간, 그리고 점심.
아쉬움 속에 성 안으로만 돌고, 콜 택시를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