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고개_ 강씨봉_ 오뚜기고개 비박산행 2일
2011.2.5(토)
비박지 출발(11:50)_ 백호봉(12:20)_ 강씨봉(1:00)_ 점심(1:40-2:10)_ 한나무봉(3:35)_ 오뚜기령
(3:44)
7시 경 일어나 눈을 뜨니 온 세상이 상고대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 맛에 겨울 비박을 한다. 텐트 근
처를 어슬렁거리며 그 보석들을 사진기에 담아 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 찍히질 않는다. 숟가락을
들어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커피 한 잔....... 본진이 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제 민둥산에서 비
박을 했는데 물이 없어 아침을 해 먹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 비박지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본진은 상당히 지쳐 있다. 게다가 일부는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몇몇은 도성고개에서 그냥 하
산한다. 나머지 여덟 명이 도성고개를 출발한다. 늦은 시각이다.추위는 많이 수그러져 있다.바람도 없
다.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비박지의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그런데 이런 풍경까지 뒷받침해주면 금상첨화다. 비박지를 늦게 떠난 탓에 여유를 갖고 비박지 근처를 돌아다녔다.
도성고개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 논남기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500미터 쯤 내려가면 계곡이 있다. 아침을 먹고 오지 못한 본진들을 위해 이 계곡에서 물을 떠 오다. 갔다 온 사람들 말에 따르면 산행로에서 한참을 또 내려가야 한단다.
이번 비박을 위해 내가 갖고 간 xk가스다. 기온에 상관이 없이 일정한 화력을 발휘해, 휘발유보다 더 인기를 끌다.
철수를 시작하다.
이제 출발이다. 상당히 늦은 시각이고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그런데도 아직 상고대는 그대로 피어 있다.
도성고개에서 30여 분 가파른 길을 올라 능선에 올라서면, 다음부터는 완만한 길이다.
백호봉
강씨봉. 궁예 부인 강씨가 피난을 와 이 근처에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실 산을 오르내리락하기 전까지는 궁예란 인물이 내 역사책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러나 경기 북부 지역 산들과 강원도 서부 지역 산들 여러 곳에서 그의 흔적들을 만나며, 그의 삶과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언젠가 내가 산행 중에 만났던 그분으로 여겨진다.
이날 우리가 걸은 길은 백두대간의 줄기에서 서남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한 구간이다. 이 구간에선 멋진 능선길이 펼쳐지고 경기도 고산인 명지산 화악산 등을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아쉽게도 온도가 오르면서 안개가 짙게 드리워, 시야가 좋지 않다. 능선길은 그나마 보이지만 서로 이웃한 산과 산들의 모습은 좀처럼 모양새 있게 볼 수가 없다. 능선길은 대체로 노출되어 있어, 여름 산행은 무척 힘들 듯하다.
모든 것이 길이다. 나의 삶도, 우리의 인생도, 인류의 역사도 시간 위에 놓여진 길을 걷는다. 그리고 오늘 나는
한북정맥 위에 놓여진 눈길을 걷는다.
한나무봉.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지 정식 표지판은 없고, 현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위에 매직으로 누군가가 써 놓았다.
주렁주렁 매달린 산악회 리본들이 오늘의 종착점 오뚜기령에 다 왔음을 알리고 있다.
오뚜기령. 예전에 오뚜기 부대가 있었던 탓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경기도 포천과 가평을 이어주는 길 정상이다. 요즈음은 오프 로드 차량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눈 위에 짚차 바퀴들 자국이 어지럽다. 오프 로드를 즐기는 후배 하나가 이곳에 오고 싶다고 안내하라 조른다.
오뚜기령 표지석 위로 오르는 길. 왼쪽으로 가면 청계산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한우리봉으로 넓직한 공터가 있다. 오늘 저녁 비박은 그곳에서 하기로 하다.
이곳에도 짚차 바퀴들 흔적이 요란하다.
텐트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보다 밖에서 보는 세상이 훨씬 더 넓다. 카메라에 찍혀 나오는 세상보다 눈으로 보는 세상이 훨씬 더 넓다. 그러나 그 어떤 세상보다 열려진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가장 넓다.
땅이 고르고, 넓직한 헬기장이다. 일행들 대부분은 한우리봉 표지석 근처에 텐트를 쳤지만 나는 멀찌기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상석 옆의 이곳도 좋다. 그러나 다소 경사가 진 것이 흠.
비박을 할 때 가장 매력적인 타임은 밤이다. 비박지에서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결국 매력적인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아진다.
추위에 강하다는 것을 너무 과신한 탓인가? 우모복을 가져 오지 않았더니, 저녁 모임 좌석에서 조그만 바람에도 식은 땀
때문에 오들오들 떤다. 결국 소주 몇 잔 먹고 있다가 일찍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다.
일찍 텐트로 돌아왔더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mp3가 생각이 나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위치를 켠다. 그러나 작동이 안된다. 분명 서울에서 일동까지 버스를 타고 올 때는 작동이 되었는데....... 추위에 배터리가 나간 것인가? 침낭 안에서 머리를 내밀고 텐트 문을 여니 별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을 찍어 볼까? 그러나 이 순간 침낭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귀찮다. 어제는 침낭 안에 핫팩 두 개를 넣고 잤는데, 발이 편안했다. 그러나 오늘은 날진 수통의 물을 데워 발바닥 부근에 놓고 잔다. 어제보다 더 따스하다. 침낭 안에서 뒹굴다 잠이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