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길/산행

한라산, 돈내코_ 영실

난다데비 2011. 2. 2. 11:00

 

 

2011.1.29(토)

 

 

 

서귀포 중앙로터리 출발(9:00)_ 돈내코 버스정류장(9:26)_ 돈내코 통제소(9:55)_ 평궤대피소(12:22)_

남벽분기점(1:09)_ 윗세오름대피소,점심(2:18-2:50)_ 영실 휴게소(4:20)_ 영실매표소(5:00)

 

 

 

_ 날씨가 너무 안 좋아요

한라산에 오르겠다며 나서는 나를 보고 주인 내외가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바람이 약간 불고 조금

흐린 날씨다. 뭐 이런 날씨는 늘상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토박이 주인 내외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산행을 한다.

 

한라산은 광대하게 넓지만, 산행코스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북으로는 성판악 관음사 코스가 있고,그

정점에 백록담이 있다. 남으로는 어리목 영실 돈내코 코스가 있고, 그 정점에 윗세오름이 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코스는 재작년 15년만에 다시 문을 연 돈내코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돈내코   코스로

오른후 영실에서 마치기로 했다.

 

 

 

 

 

 

  모든 교통편은 중알로터리와 그 옆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 있다. 돈내코는 중앙로터리에서 시내 버스를 이용한다. 출발하기 전 숙소 주인의 추천을 받아 아침을 먹었던 신나리 해장국집. 선지해장국을 먹었는데 약간 매운 것이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버스정류장. 여기서 공동묘지 지역을 지나 돈내코 코스로 오른다. 이곳으로 향하는 버스가 중앙로터리에서 매시 정각에 있다. 이날 내가 탑승한 버스는 9시 출발이었다. 8시 버스를 탔어야 했다. 그래야 하산 지점인 어리목이나 영실의 마지막 버스 시각과 맞출 수 있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윗세오름에도 알맞은 시각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날은 이런 것들이 다 의미가 없었다. 하산할 즈음, 악천후로 교통이 통제되어 버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번의 한라산 산행이 있었는데, 돈내코에서 윗세오름까지는 오늘이 처음이다.

 

 

 

 

 

 

  돈내코 통제소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밀림지대. 빽빽하게 줄 지어 선 푸른 나무들과 순백의 눈,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것은 태풍의 눈이었다.

 

 

 

 

 

 

  딱 여기까지다. 한라산은 보통 해발 100미터 오를 때마다 이런 돌이 있다. 그런데 이날 이 돌 이외는 볼 수가 없었다. 아마 눈에 모두 파묻힌 모양이다.

 

 

 

 

 

 

 

 

 

 

 

 

  차라리 이런 풍경은 포근했다.

 

 

 

 

 

 

밀림지대를 지나면서 깊은 숲은 사라지고,키가 작은 관목들과 조릿대들이 나타난다. 숲 속을 지날 때도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람은 강하게 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부터 점점 바람이 거세어졌다. 눈보라가 휘날리고, 짙은 안개가 끼었고, 강한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안면부다. 버프를 했지만 콧김에 적셔진 버프가 얼었고, 조금이라도 노출된 부분은 사정없이 찬 바람이 밀고 들어왔다.

 

 

 

 

 

 

  해발 1450미터 지점에 있는 평궤대피소. 같은 시각에 같은 코스로 오르던 사람은 30여 명. 그 가운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포기했고, 일부는 이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여기서 장비를 점검한 후, 그냥 지나쳤다. 만일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면 산행을 포기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선글라스를 고글로 대체하고, 윈드 스토퍼 위에 자켓을 입었다. 사실 자켓을 덧입지 않아도 이 정도 추위는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지난번 덕유산 종주시, 머리 부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후드를 이용하기 위해 자켓을 입었다. 맑은 날씨에선 이 대피소 위에서 서귀포 앞바다를 볼 수가 있다는데, 지금은 대피소 앞 나무 몇 그루만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원시적 자연 앞에 내가 서 있음을 느끼다. 비록 추위에 떨었지만, 뭔가 모를 감동이 다가왔던 순간들이다. 평소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환경에서 카메라 꺼내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해발 1450미터 지점에 있는 남벽통제소. 대부분의 산행객이 중도 포기를 했고, 이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은 댓 명 정도. 모두 한 팀인 듯하다.

 

 

 

 

 

 

  한라산의 남벽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남벽은 볼 수 없다. 5미터 앞까지의 세상만 보인다. 마치 재작년 안나푸르나에 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베이스 캠프까지 올라갔지만, 악천후로 안나푸르나를 볼 수는 없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는 바람없는 상태에서 짙은 안개 너머로 빙하 깨지는 울림이 곳곳에서 들렸고, 오늘은 드센 바람이 휘파람을 불며 귓가를 때렸다는 점이다.

 

 

 

 

 

 

 

 

 

 

 

 

  오늘 내가 여기 와 있음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그러나 찍어 줄 사람도 없고, 설령 곁에 사람이 있더라도 부탁할 상황이 아니다. 하늘 높이 뻗은 손이 얼얼해진다. 그나마 이 추위에 사진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신기하고, 배터리 역시 숨이 붙어 있는 것에 감사한다. 산행내내 고글에 끼는 서리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았는데, 고글에 서리까지 끼니 완전히 죽을 맛이었다. 복장을 잘 갖춘 탓에 추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입김 때문에 버프를 완전히 올리지 못했는데 그 빈 공간을 찾아 들어오는 겨울 찬 바람은 고통을 주었다. 결국 그 부분에 동창이 걸려 요즈음 약을 바르고 있다.

 

 

 

 

 

 

 

 

 

 

 

 

  윗세오름으로 가는 길의 방아오름샘. 얼지 않았다. 한 모금 마셔 본다. 이 앞에 전망대가 있다.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꺼내니 손에서 날아갈 것 같다. 옆에서 사진을 찍던 한 사람은 그만 벗은 장갑과 내려놓은 스틱이 날아가볐다. 그 모습을 보고 옆구리에 낀 벙어리장갑을 꼭 붙든다.

 

 

 

 

 

 

  이제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주황색선과 붉은 삼각깃발만이 이정표가 되어 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앞에 러셀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 발자국이 보였다는 점이다.

 

 

 

 

 

 

 

 

 

 

 

 

  윗세오름대피소(1700미터). 대피소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30여 명의 산행객으로 빼곡하다. 대부분 어리목으로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날 그나마 안전했던 코스다. 사발면과 초코파이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상황판을 보니 영하 14도에 바람도 초속 14미터다. 그렇다면 체감온도는 아마 영하 33도 정도일 것이다.카메라를 꺼내 보니 물이 줄줄 흐르고, 고글에 서린 입김은 얼음이 되어 뚝뚝 떨어진다.

 

 

 

 

 

 

 

 

 

 

 

  대피소 직원들이 하산을 재촉한다. 기후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며 어리목으로의 하산을 권유한다. 대부분 팀으로 왔기 때문에 팀장들에게 주의를 준다. 나보고 어느 팀이냐고 묻는다. 혼자라고 하자 어리목으로 하산하는 팀을 빨리 따라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영실을 고집했다. 마침 영실로 내려가는 댓 명이 있다. 그들은 차를 그곳에 세웠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얼른 그 팀의 뒤에 붙어 하산한다.

 

 

 

 

 

 

  영실코스. 직원들이 왜 어리목 하산을 권유했는지 그 이유를 아는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적설량에 안개가 짙게 깔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머리를 들어보니 앞서가던 일행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그들이 남긴 발자국조차 금세 눈보라에 휠쓸려 사라졌다. 이제 혼자 남았다. 공포가 엄습한다. 이제 러셀을 하며 내려온다. 돈내코로 오르는 길이 추위와의 싸움이었다면, 하산하던 영실 코스는 추위에 공포까지 곁들여졌다. 이제 의지해야 할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이날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다가왔다. 영실코스는 한라산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내리고, 악천후가 이어지는 곳이다. 게다가 코스 길이는 짧지만, 경사가 심하고 대부분의 산행로가 계단으로 되어 있다. 계단이 대부분 눈에 잠겼고, 간간히 보이는 계단 손잡이가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아차 하는 순간 계단 옆 눈을 밟으면 깊이 모를 눈 속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걸어가야 할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눈밭에 발을 파묻고 기다리기를 5분 여, 그때 잠시 안개가 걷히며 한 주먹만큼 눈 위로 계단이 삐져 나온다. 그래도 그 길까지 직진해야 할지 아니면 에스 코스로 걸어가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아 스틱으로 조심조심 눈을 찔러 보며 앞으로 나간다. 그 풍광 좋은 영실기암과 오백나한 구경은 꿈도 못 꾼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하산하기를 1시간 여, 마침내 평온한 지역으로 내려왔다. 바람이 아직 잦아들지 않았지만,이 정도는 훈풍이다. 머리를 들어보니 상고대가 피었다. 안도감 속에 눈을 즐긴다.

 

 

 

 

 

 

 

 

 

 

 

 

 

 

 

 

 

 

  영실휴게소 앞 풍경. 행복감에 젖는다. 영실에서 서귀포로 가는 막차가 끊겼다. 아니 이미 벌써 영실 지역은 폭설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시간에 내려왔어도 버스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매점 직원들의 안내로 택시 기사와 통화한다. 통제가 된 상태에서도 내달리는 택시 두 대가 있었다. 어렵사리 서귀포로 향한다. 택시비 3만원.

 

 

 

 

 

 

  영실매표소. 영실휴게소에서 이곳까지 한참을 내려와 택시를 탔다. 이곳에서 서귀포로 가는 길, 경찰들이 곳곳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는다. 시시각각 들려오는 한라산 소식을 들으며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부터 시작해 다음날까지 한라산 전 지역은 출입 통제가 이루어졌다.

 

 

 

 

 

 

  저녁은 어제 들렸던 웅이식당 바로 옆 웅담식당에서 오겹살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자리가 없다. 대신 근처 아무 집이나 들어가 2인분을 시켜 소주와 함께 먹었다. 1인분은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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